영국화가 호가스 탄생300돌 기념 런던서 특별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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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음악은 다른 공연예술처럼 시간과 장소의 구애를 받는 장르여서 사진.TV.비디오가 출현하기 전의 음악회 모습은 미술작품을 통해 상상하는 수밖에 없다.그래서 음악을 소재로 한 미술작품은 그 자체의 예술적 가치 못지않게 당시 음악계 상황을 엿보게 하는 귀중한 자료다.18세기 런던 음악계의 모습을'성난 음악가''거지 오페라'등의 풍자화에 담았던 영국의 윌리엄 호가스는 그런 면에서 음악사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화가로 꼽힌다.호가스 탄생 3백돌을 맞아 특별전등 각종 기념행사가 다양하게 열리고 있다.런던 템스강변에 위치한 테트리 갤러리에서는 지난 3월부터'화가 윌리엄 호가스전'이 열리고 있으며 내년까지 런던에서만도 특별 기념전이 10여회 계획되고 있다.

런던의 불우한 가정에서 태어난 호가스는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인한 빚으로 가족 다섯명 모두가 5년동안 감옥생활을 해야 했다.이런 경험을 통해 그는 가난을 뼈저리게 느꼈고 서민층의 삶에 따뜻한 시선을 보내게 됐다.그는 예술이 미적인 즐거움 못지않게 도덕성도 제고(提高)해야 한다는 믿음을 추구했다.그가 활동하던 무렵은 런던에서 서민을 위한 음악회의 전통이 싹트던 시기.그가 남긴 그림에서는 당시 실내음악(궁정음악)과 야외음악(서민용 음악)사이의 갈등이 잘 나타나고 있다.

그림의 제목이 된'거지 오페라'는 1728년 당시 귀족사회의 타락상을 고발하기 위해 만든 풍자음악.존 게이 대본,페푸시 편곡으로 탄생된 이 오페라의 공연장면을 그대로 화폭에 담은 것.이 오페라는 서민들의 인기를 독차지하면서 이탈리아식 궁정오페라를 고집했던 헨델의 오페라단을 파산으로 몰아넣었다.호가스의 그림에는 노상강도인 주인공이 사형을 선고받자 그와 결혼했다고 주장하는 두 여인이 무릎을 꿇고 선처를 호소하는 장면이 담겨 있다.

당시 귀족들은 무대 위에서 오페라를 감상하는 특권을 누렸는데 그림속 귀족 관중중에서 맨 오른쪽에 자리잡은 볼튼 공작은 이 오페라에 출연중인 흰옷의 프리마 돈나와 열애에 빠져 있었다.호가스는 이 그림에서 극중 노상강도의 중혼(重婚)과 귀족의 외도중 어느 쪽이 더 도덕적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지배층에 대한 조롱과 야유가 느껴진다.

네덜란드의 풍자화가 브뤼겔의'사순절과 카니발'을 연상케 하는'성난 음악가'는 음악양식의 차이가 사회계층과 무관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그림속의 행인들은 한결같이 남루하고 지저분한 차림새다.사생아를 안고 있는 산부의 손에는'여자의 몰락'이라는 낱장 악보가 들려 있다.건물 앞에서 노상방뇨를 서슴지 않는 소년도 눈에 띈다.모두가 하층민이거나 떠돌이인 그림속의 인물들은 금방이라도 폭도로 돌변할 것만 같다.

그림 한가운데 귀를 틀어막고'시끄럽다'고 소리를 지르고 있는 사람은 당시 런던의 이탈리아 오페라단 악장이었던 카스트루치.맞은 편에는 궁정악단에서 쫓겨난 오보에 주자가 보란듯이 시끄러운 음악을 연주하고 있다.건물 벽에는'거지 오페라'의 공연을 알리는 포스터가 붙어 있다.

이 그림에서 사람소리.기계소리.짐승소리.물건을 팔고사는 소리등은'소음'으로 탄압을 받는다.예술음악이 콘서트홀이라는 실내공간으로 들어오면서 거리의 음악은 비난.조소.금지.감시의 대상이 된 것이다.

실내음악은'천재'와'스타'의 지위를 누리고 있지만,야외음악은 하층민의 아마추어 음악이라는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다.한마디로'성난 음악가'는 콘서트홀이 등장하기 전 서구 음악계의 단면도라 할 수 있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사진설명>

음악이 콘서트홀이라는 전용음악당에서 연주되기전 실내음악과 야외음악이 갈등을 일으키면서 새로운 음악양식과 청중을 낳았다.바로크 시대 영국 음악계의 단면도를 화폭에 담았던 윌리엄 호가스(1697~1764).그가 1741년에 발표한 판화 '성난 음악가'(The Enraged Musician).34.6×39.8㎝.런던 대영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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