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M&A서배운다>6. TBS 인수한 타임워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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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95년8월 부인과 함께 몬태나의 한 조그만 공항에 내린 제럴드 레빈 타임워너 회장은 테드 터너 TBS회장의 세번째 부인인 제인 폰다의 따뜻한 영접을 받았다.

터너의 별장에서 부인들끼리 산책을 하고 음식을 만드는 동안 두사람은 타임워너와 TBS의 합병조건을 하나씩 챙겨나갔다.

마침내 TBS주식 1주와 타임워너 주식 0.8주를 맞바꾸기로 합의했다.당시 TBS 주가가 24달러,타임워너 주가는 42달러였으니 TBS 1주를 34달러로 후하게 쳐준 셈이다.아울러 레빈은 터너에게 10% 지분을 보장하고 타임워너의 넘버투맨으로 앉히는데 동의했다.

터너는 방송불모지 애틀랜타에서 CNN을 일으킨 케이블TV의 대부다.합병 당시만 해도 직선적이고 독립심이 강한 터너가'상사를 제대로 모실지'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았다.실제로 지난 2년간 크고 작은 문제로 레빈의 속을 꽤나 썩였다.

예를 들면 지난해 타임워너가 CBS에 영화패키지를 팔기로 계약한 사실을 뒤늦게 안 터너는 담당 임원에게“고객과 제1대주주중 누가 더 중요한지 말하라”고 다그치기도 했다.왜 TBS에 주지 않았느냐는 뜻이다.

95년 타임워너와 합병하기 직전까지만 해도 자신이 타임워너를 인수할 생각으로 물주를 찾아 빌 게이츠나 폴 앨런과 같은 부자들을 만나고 다녔던 터너가 이제 2인자에 만족해 몬태나 산중에서 버펄로 키우는 재미로 여생을 보낼 것으로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레빈의 고민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타임워너처럼 개성이 강한 주주구성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9%를 보유한 시그램의 에드거 브롬프먼 회장은 머리가 비상하고 야심만만하다.

95년에 마쓰시타로부터 57억달러에 인수한 MCA(유니버설영화사의 모기업)로 만족할 사람이 아니라고 소문나 있다.8%를 가진 존 말론 TCI회장은 93년 회사를 벨 애틀랜틱에 팔기로 작정하고 협상하던중 가격(3백30억달러)이 낮다고 배짱을 부린 인물이다.가입자가 1천3백만명인 TCI는 미국 제1의 케이블TV로 타임워너와 직접 경쟁하는 입장이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경영실적에 있다.합병이 발표됐을 때만 해도 투자자들은 혹시나 하고 기대를 걸었지만 2년이 지난 지금도 달라진 것이 없다.

89년 타임과 워너를 합쳐 만든 타임워너는 워너브러더스(영화).HBO(유료영화케이블).타임(타임.포천등)등 돈벌이가 쏠쏠한데도 합병이후 지금까지 단 한 해도 이익을 낸 적이 없다.

주된 이유는 합병자금에 대한 이자(96년 부채 1백80억달러에 대한 연간이자만 14억달러)와 인수시 지불한 웃돈에 대한 상각 때문이다.게다가 해마다 10억달러씩 투자를 계속하고 있는 케이블사업이 언제쯤 이익을 낼지 가늠하기 힘든 실정이다.다각화에 열을 올리던 거대기업들이 자산이나 사업부문을 팔아치울때 타임워너는 거꾸로 다각화로 나갔던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95년 터너의 인수도 무리였다는 평가가 우세하다.물론 시너지는 타임워너에게 절실한 문제였고 터너 인수직전 일어난 디즈니.ABC의 합병이 레빈을 더욱 조급하게 만들었고,결국 터너 인수로 다각화의 후유증은 더 깊어졌던 것이다.

월가는 지금이라도 케이블사업등을 떼내는(spin-off)것이 최선이라고 입방아다.부채를 갚아 몸집이 가벼워지면 알짜 사업들 중심으로 얼마든지 수익성을 개선할 수 있다는 얘기다.레빈이 내외의 불만을 얼마나 견딜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 권성철 전문위원

<사진설명>

타임워너의 TBS 인수 합의 직후 활짝 웃고 있는 레빈 회장과 터너 부회장.그러나 합병후 2년동안 적자가 계속 늘어나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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