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조원 펀드 영역싸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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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펀드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펀드 판매와 운용을 둘러싸고 증권사와 자산운용사가 갈등을 빚고 있다.

증권사들은 연내 운용사의 펀드 직판이 허용되는 만큼 증권사도 펀드를 운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미 은행.보험사는 자산운용업을 회사 안에서 겸할 수 있다. 그러나 운용사들은 증권사가 자산운용을 하게 되면 펀드 정보가 악용될 소지가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판매와 운용을 분리하면서 과거 투신사에 대한 투자자의 불신이 크게 줄었는데 이를 되돌리면 그간의 노력이 물거품이 된다는 주장이다.

?증권사의 위기감=펀드 판매 경로가 다양해지면서 증권사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3년 전만 해도 전체 펀드의 89%가 증권사 창구에서 팔렸지만 지난 2월 증권사 판매 비중은 72%로 뚝 떨어졌다. 같은 기간 은행의 판매 비중은 11%에서 27%로 늘어났다.

이런 가운데 운용사의 직판이 시작되면 증권사 입지가 더 위축될 것이란 위기감이 팽배하다. 운용사 직판은 전체 판매액의 20% 또는 4000억원까지로 제한되지만 법인 고객 유치에선 타격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직판 펀드는 수탁액의 2% 안팎인 판매 수수료를 받지 않기 때문에 법인이 100억원을 맡길 경우 증권사를 통하는 것보다 2억원을 절감할 수 있다. 대형 증권사 관계자는 "자칫하면 지나친 수수료 인하 경쟁으로 증권사와 운용사 전반의 수익이 줄고 서비스 질이 떨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철호 동원증권 애널리스트는 "최근 규제 완화의 주요 목표는 고객의 선택폭을 넓히는 것인데 주로 은행 고객의 선택폭이 확대됐기 때문에 증권사들로선 위기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증권사의 자산운용 겸영 논란=증권사도 펀드 판매 경로 확대는 피할 수 없는 대세로 받아들이고 있다. 대신 이에 맞춰 증권사가 살길도 마련해 달라는 주장이 거세다. 지금처럼 자산운용이나 신탁업을 한 회사 안에서 겸영하는 것을 막으면 펀드 시장에서 뿐 아니라 자산관리 부문에서도 은행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투신사에서 증권사로 바뀐 회사가 겸영 허용 요구에 적극적이다. 대투증권 관계자는 "펀드 직판을 한다면 과거처럼 한곳에서 운용과 판매를 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운용업계는 증권사의 요구가 지나치다고 비판하고 있다. 증권사가 펀드의 매매 주식 거래 내역을 증권사의 자기 매매나 종목 분석에 악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자산운용협회 서종군 정책기획팀장은 "미국 등 선진국에선 법적으론 사내 겸영이 허용되지만 실제론 모두 별도 회사를 차려 자산운용업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재정경제부 최상목 증권제도과장은 "현재로선 겸영 허용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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