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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속 깊이 뜨듯해지는 ‘경상도의 맛’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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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겨울에는 역시 따끈한 국물에 밥 한 덩어리 툭 넣어 훌훌 말아 먹는 맛이 최고다. 한 그릇 뚝딱 해치우면 저녁까지 배가 따뜻해지는 국밥으로 서울에는 설렁탕이, 경상도에는 돼지국밥이 있다.
겨울날 어느 골목 모퉁이에서 술 한잔을 부르는 넉넉한 맛을 소개한다.

“어! 돼지국밥집이 있네요.”
홍대입구역 4번 출구로 나와 안쪽(세븐 스프링스 옆으로 들어와 첫 번째 골목 사거리에서 우회전) 길을 걷다가 우연히 돼지국밥집 ‘돈수백’(02-324-3131)을 발견했다. 국밥집답지 않게 깔끔하다.

선배는 못마땅한 표정이다. 홍대 앞까지 왔는데 뜬금없이 국밥이냐, 그것도 ‘돼지’국밥이냐는 불만이 그득하다. 어쩌랴. 이미 경상도 돼지국밥 맛을 알아 버렸는데. 그런데 경상도 밖에서 돼지국밥집을 만난다는 게 흔치 않다. 서울내기에게 그 맛을 전도하고 싶었던 참에 잘된 일이다.

“돼지국밥이면 돼지국밥이지 ‘돈탕반(豚湯飯)’이 뭐냐?”
하긴 그렇다. 국밥이라는 게 장터 음식 아니던가. 그래도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니다. 경상도 지역을 벗어나면 ‘돼지국밥’이라는 말 자체에 거부감을 갖는다. 누린내와 비계의 느끼함을 떠올리기 때문이다. 서울에 몇 군데 생겼던 돼지국밥집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생각할 때 국밥 이름으로 인한 선입견을 갖지 않게 하는 일도 중요하리라.

“수육 작은 접시에 약주 한잔부터 하실래요?”
국밥을 먹을 때는 반주가 있어야 하는 법이다. 남쪽 지방에 있을 때 돼지국밥집을 잘 찾은 이유 가운데 하나는 혼자 밥 먹기에 좋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늘 서글픔보다 아쉬운 게 있었는데, 이렇게 동행이 생겼으니 수육에 반주 한잔 기회를 놓치랴. 이어서 나온 뽀얀 국물의 돼지국밥을 보고 선배 한마디.

“이거 설렁탕의 다른 버전이네. 누린내도 없고.”
어찌 보면 그렇다. 돼지 사골을 하루 종일 푹 고아 국물을 내고 그 육수에 돼지고기를 삶아 국물과 수육을 담아 내니 설렁탕과 만드는 방식이 비슷하다. ‘돈수백’의 돼지국밥은 남쪽의 국밥에 비해 깔끔한 맛이다. 개인적으로는 돼지국밥은 돼지국밥답게 약간 누린내도 나고 투박해야 제 맛이라고 생각하지만, 여긴 서울이지 않은가.

“자, 새우젓으로 간하시고요. 정구지(부추) 무침도 잔뜩 넣으시고 고춧가루 양념은 원하시면 넣으시고요. 정구지는 멸치젓으로 무쳐야 맛이 제대로 난다고 하죠.”
돼지국밥에 있어서는 내가 선배다. 경상도 여러 지역을 돌면서 맛보았으니까. 돼지국밥에는 배추김치와 깍두기가 같이 나오는데 이 맛 또한 중요하다. 국밥을 먹다 땡초(청양고추)를 쌈장에 찍어 베어 물어도 좋은데 매운 맛을 즐길 ‘용기’가 필요하다. 땡초와 마늘을 돼지국밥에 넣기도 한다.

돼지국밥은 고기만 넣는 ‘살’국밥이 있는가 하면 내장만 넣는 ‘내장’국밥이 있다. 살코기의 부드러운 맛과 내장의 쫄깃한 맛을 같이 즐기고 싶으면 ‘섞어’ 한 그릇을 주문하면 된다. 국에 밥을 말아 내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을 위해 ‘따로’국밥을 팔기도 한다.

“돼지국밥은 부산 아니야? 그런데 ‘밀양돼지국밥’이라는 간판이 많은 걸 보면 돼지국밥이 밀양에서 시작된 모양이지?”
“밀양에는 1940년 문을 열어 3대째 이어 오는 오래된 돼지국밥집이 있으니 밀양이 원조라고 할 수 있죠. 하지만 돼지국밥집은 부산을 비롯한 경상남도 지역 어딜 가나 많고, 오래되고 맛있는 집도 많죠. 대구에 가도 ‘돼지국밥 골목’이 있고요.”

돼지국밥은 한국전쟁 때 피란민들이 쇠고기 뼈를 이용해 만드는 설렁탕과 달리 비교적 값싼 돼지 뼈로 음식을 만들게 된 것이 계기가 됐다고 한다. 하지만 밀양에서 돼지국밥을 그 전부터 팔았다고 하니 돼지 사골을 푹 고아 만든 국밥은 오래전부터 있었다고 보는 게 맞을 듯하다.

예전에 농촌에서 마을이나 집안에 큰 일이 있고 농번기에 많은 이가 한꺼번에 일을 하게 되면 돼지를 잡는 일이 흔했다. 이때 여럿이 같이 나누어 먹기 좋은 게 돼지국밥이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국밥이 장터에 나와 팔리게 되었고 밀양에서 비롯되어 경상도 여러 장터에 자리 잡았을 수도 있다. 부산에서는 순대국밥이나 선지국밥처럼 돼지국밥은 하루 살기가 고달픈 이들의 참한 먹거리였으리라.
추운 겨울날 따끈한 돼지국밥 한 그릇이 밥도 되고 술국도 되니 오랜 친구만 있으면 그만이지 않겠는가.


맛있는 것 먹기를 낙으로 삼는 대학 미학과 선후배 김태경(이론과실천 대표)ㆍ정한진(창원전문대 식품조리과 교수)씨가 미학(美學) 대신 미식(美食)을 탐험합니다.

사진 신입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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