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신간을 찾아서] '세상에 나쁜 벌레는 없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세상에 나쁜 벌레는 없다/제 The Voice of the Infinite in the Small
조앤 엘리자베스 록 지음, 조응주 옮김
민들레, 376쪽, 1만2000원

가장 혐오스러운 곤충의 대명사인 바퀴벌레는 실제로 하수구나 쓰레기 더미에 주로 서식한다. 이 벌레가 나오는 집은 주인의 관리 부실로 지저분한 공간이라는 이미지까지 던져주며, 겨울철 알레르기와 천식의 주범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하지만 지구상의 온갖 벌레에 대해 애정어린 관찰을 보여주는 책 『세상에 나쁜 벌레는 없다』의 저자는 뜻밖의 정보를 전해준다.

바퀴벌레는 의외로 깨끗한 습성을 가졌다는 것. 고양이처럼 제 몸 구석구석을 잘 핥아 관리하는데, 불가피하게 인간과 접촉한 뒤에는 더욱 격렬하게 몸을 핥아 청결 유지에 최선을 다한다는 귀띔이다. 놀라운 점은 그 다음 . 자연사하는 바퀴벌레의 상당수가 왜 뒤집혀 죽은 채로 발견되는가 하는 대목이다. 곤충학자들도 풀지 못한 수수께끼라는데, 저자 록의 주장은 상식을 훌쩍 뛰어넘는다.

“로스앤젤레스의 심리학자 게일 쿠퍼가 쓴 책 『동물 사람들』에 등장하는 별난 사람인 엘리슨에 따르면, 바퀴벌레는 죽음을 단계별로 맞이한다. 우선 모든 자율신경을 통제할 수 있는 요가 수행과 비슷한 도취상태나 가사상태로 서서히 접어든다. 첫 단계에서는 식음을 전폐한다. 이 단계에서는 긴장이 풀리며 세상과 전혀 동떨어진 상태에 접어든다. 물리적 세계와 인연을 끊으면서 바퀴벌레는 절로 등을 바닥에 대고 다리를 축 늘어뜨린다. 이러한 자세로 며칠이 지나야 죽는다.”

어떠신지. 사실 이 책의 상당 대목은 이런 식의 서술이다. 과학적 엄밀성이 다소 떨어지는 느낌도 없지 않지만, 우주의 생명에 대한 애정을 불러일으키는 것도 사실이다. 때문에 불교적 생명관을 연상시키며, 신비스럽다는 느낌마저 준다. 어쨌거나 바퀴벌레의 죽음에 관한 묘사가 사실이라면 높은 도력(道力)의 수행자가 보여주는 장엄한 입적을 연상시킨다. 말로만 들어온 좌탈입망(坐脫立亡)을 한갓 미물이 실현한다는 얘기에 어안이 벙벙해진다.

파리·모기·사마귀·벌·거미 등 주변의 벌레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는 이 책은 생태학적 세계관을 분명하게 한다. “(19세기 기계적 세계관 이후의) 우리 문화가 곤충과 멀어질 대로 멀어졌으며, 이러한 분리 현상은 이제 만물 사이의 동일성에 관한 인식으로 회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교양서의 목표는 간단치 않다. 곤충과의 깨어진 관계를 회복해 우리 인간의 소외까지도 치유하자는 것이다.

저자는 스스로 이렇게 밝힌다. “다른 생물학적 종(種)에 암호처럼 새겨진 지혜를 밝히는 것”이 자기의 사명이라고…. 1998년 초판을 보완한 이 새 판본의 책을 미리 읽었던 고려대 강수돌 교수의 ‘생태학 간증’도 염두에 둘 만하다. “이 책은 인간 아닌 존재에 대해 갖고 있던 편견에서 벗어나게 해줬을 뿐 이나라 그런 편견 때문에 나도 모르게 상처받고 있었던 나의 영혼까지 치유해 준 고마운 민간요법이었다.”

이 책 정보의 밑자료는 저자의 관찰 보다 기왕에 나왔던 타 문화권 책들의 간접정보에 힘입고 있다. 서구사회는 물론 인디언 문화권의 각종 기록, 중국의 도가 철학이나 고대 인도의 철학서들이 상당수다. 일테면 벌에 대한 서술 대목은『리그베다』나 『코란』에 나타난 벌에 관한 정보를 들춰보이면서 “벌은 신의 말씀을 직접 들은 유일한 피조물”로 그려진다고 일러준다. 대형 연어를 낚은 인디언들의 추장이 “그 연어는 (연어의)원로”라며 풀어줬다는 일화 등도 나온다.

이 때문에 거미는 공동체 건설에 헌신하는 이타적 생물로 묘사된다. 그 혐오스러워 보이는 사마귀 특유의 당당한 자세에 찬양을 보내며 중국의 신체 수련술인 쿵후도 여기에서 나왔다고 설명한다. 알고 보면 벌레들을 ‘가상의 적’으로 알거나 그들에 갖고 있는 적대감이란 거의 근거가 없다는 점, 그 자체가 ‘닫혀 있는 인간 이해’의 산물이라는 식인데, 그런 정보는 설득력있게 전개된다. 이 책의 원제가 ‘작은 것들 속에 깃든 신의 목소리’로 돼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분류컨대 『세상에 나쁜 벌레는 없다』는 곤충학 정보를 담은 과학서라기보다 자연 친화와 생태 우선주의를 전하는 포괄적인 계몽서다. 따라서 주말 자연 나들이에 챙겨 읽을 교양서로 손색이 없어 보인다. 이 책을 접하고 난 뒤라면 작은 날벌레에도 몸을 움츠리거나 경기를 일으키는 도회지 아이들의 태도가 바뀔 것도 같다. 합리적 사고방식을 가진 서구인들이 외려 신비주의에 가까운 탈(脫)합리주의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도 찬찬히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조우석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