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국민이 떠안게 된 부실연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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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정부가 국민연금제도 개선기획단을 만들어 국민연금의 전면손질에 나서기로 했다.현재의 방식으로는 완전노령연금 지급이 시작되는 2008년 이후의 수지적자를 감당할 수 없어 2033년에는 적립기금이 완전히 고갈될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다.

88년 사업장근로자들을 대상으로 도입된 이후 불과 9년만에 수술대에 오른 것이다.

정부는 기금의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연금요율을 높이고 연금지급개시 연령을 60세에서 65세로 늦추거나 연금지급액을 줄이는 방안을 검토한다고 한다.국민연금은 노령인구의 생활안정을 목적으로 한 대표적인 복지제도이고,오래전부터 기금의 불안정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돼온만큼 대책마련에 나선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그러나 이번 조치로 정부는 중요한 정책에서 단견(短見)과 무원칙을 다시한번 드러내고 말았다.

국민연금이 이 지경에 이른 것은 도입단계에서부터 재원조달에 대한 신중한 고려가 없었던데다 기금의 관리운영이 무원칙하게 이뤄진데 근본적 원인이 있다.급속한 노령화사회의 진전을 예측하지 못했고 선진복지사회에 비해 수혜자의 부담은 적으면서도 급여수준은 비슷하게 책정하는 설계상의 미스가 있었다.게다가 적립된 기금의 70% 정도를 시중금리보다 싼 정부사업에 투자함으로써 비효율성을 드러냈다.편의주의 행정의 전형적인 예다.

결국은 국민을 우롱한 결과가 되고 말았다.국민의 부담이 늘어날 것이 뻔한 상황이니 사실상 강제가입한 국민들로선 분통터질 일이다.수혜자들은 정부가 이미 약속한 혜택을 포기하지 않으려 할 것이므로 계약위반에 대한 저항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당국의 납득할만한 설명과 조치가 있어야 할 것이다.

아무쪼록 기왕 손질을 시작한만큼 국민연금이 이번에는 안정된 사회보장책의 모양새를 갖추길 바란다.재정의 안정성뿐 아니라 사회보장제도로서의 기능에 걸맞도록 사회계층간의 형평성을 확보하는 방안과 관리기구의 개선책 등을 충분한 시간을 갖고 검토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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