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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미의 열린 마음, 열린 종교] 3. 이슬람 신비주의 - 수피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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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 알라와의 직접적 만남을 추구하는 차아르 쎄이맨. 이슬람 신비주의 수행법 중 하나인 수피댄스 포스터도 보인다. 사진= 정대영(에프비전 대표)

신비주의만큼 오랜 전통이 있을까. 절대자와의 직접적 교류를 추구하는 신비주의 요소는 많은 종교에서 찾아볼 수 있다. 기독교에 신비주의가 있는 것처럼 이슬람에도 신비주의가 있다. 수피즘(Sufism)이다. 수피스트는 이슬람의 수행자를 말한다. 차아르 세이맨. 수피스트인 그를 만나는 날 다소 기분이 들떴다. 베일에 가려진 듯한 수피즘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차아르는 터키인이다. 주한 터키 이스탄불 문화원 부원장을 맡고 있다. 터키의 명문 미들이스트 공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그는 대학 시절 한국 관련 세미나를 주관한 인연으로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됐고, 2년 전 유학와 서울대 대학원에 다니고 있다.

눈이 빛나는 앳된 모습의 차아르. 꽁지 머리 스타일까지 겹치니 내가 상상했던 수피스트와 사뭇 다르다. 일과 공부를 병행하는 그가 어떻게 수피스트로 살 수 있을까.

"속세와 세상을 완전히 버릴 수는 없지만 영적으로 풍요하게 삽니다. 영원히 살 것처럼 일하고, 내일 죽을 것처럼 예배를 드립니다. 그렇게 생활과 종교의 균형을 잡고 있어요."

영원과 죽음의 경계를 뛰어넘은 것 같은 말이 가슴에 와 박힌다. 수피즘은 무하마드(마호메트)라는 예언자와 코란이라는 성서를 따르기에 무슬림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루 다섯번의 예배도 같다. 그렇다면 수피스트는 무슬림과 무엇이 다를까. 또 어떻게 신비로운 체험을 하는 걸까. 한국의 이슬람에는 수피스트 공동체가 없어 더욱 호기심이 발동했다.

"알라(하나님)가 저보다 저를 더 잘 알고 있다는 점을 마음으로 느낍니다. 무엇보다 알라의 큰 사랑을 예배 때마다 확인합니다. 저는 그 사랑을 다시 알라에게 돌리고, 알라와 제가 하나가 된 순간에 최고의 사랑이 뼛속까지 전달됩니다."

무슬림과 수피스트. 그 둘이 다른 점은 영성의 깊이였다. 차아르는 수도자의 자세로 신앙을 지켜나가고 있다. 일하고 공부하다가도 예배시간이 되면 카펫을 깔고, 금요일마다 사원에서 내일 죽을 것처럼 예배를 올린다.

알라를 체험해 보았느냐고 묻자 자신있게 고개를 끄떡였다. 어떤 방법이었느냐고 되묻자 신비한 미소로 답을 대신했다.

"양털을 '수프'라 부릅니다. 신비체험을 한 이슬람 수도자가 양털을 걸치고 유랑을 시작한 게 수피의 어원이 됐다고 해요. 8세기부터 체계적 교단이 성립됐고, 13세기에 '타리카'라는 수피 종단이 생겼지요. 초기엔 고행을 강조하는 금욕주의 성격이 짙었어요. 속세의 인연도, 물질에 대한 욕망도 끊고 자기 내면에 몰입하며 알라를 만납니다."

알라를 만나려면 여러 단계의 영적 수련을 거쳐야 한다. 수련자는 스승의 지도 아래 참회.금욕.신탁(절대자에 자신을 맡김).자족.경배.인내.묵상.단식.희사 등의 단계를 밟아야 한다. 대표적인 수행법으로 빙빙 원을 그리며 추는 '메블라나'라는 춤이 있다. 일명 수피댄스로, 이스탄불 문화원 초청으로 서울에서 공연한 적도 있다. "빙빙 돌며 춤을 추다 보면 자기를 완전히 잊고, 모든 속박에서 해방된 채 알라와 완전히 하나가 되지요. 최후의 심판, 혹은 내세가 오기 전 현세에서 절대자이자 유일신인 알라를 만나 그 사랑을 체험하는 겁니다."

수피즘은 이슬람권에서 독립된 종파가 아니다. 또 신자도 그리 많지 않다. 일례로 이슬람 수니파는 수피즘을 '비아랍적''비정통적'이라며 인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철저한 자기정화를 통한 사랑을 강조하는 차아르는 순수해 보였다. 내일 죽더라도 오늘을 지킨다는 수피즘, 그것은 절대.무한을 지향하는 종교의 뿌리와 맞닿아 있다.

김나미 <작가.요가스라마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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