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게리 올드먼, 감독데뷔작 '삼키지 말라'칸영화제 경쟁부문 올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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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게리 올드먼(39).94년 뤽 베송감독의'레옹'에서 지독히도 악한 형사역을 맡은 이래 우리나라에도 많은 고정팬을 지닌 영국출신의 성격파 배우다.

주로 악역을 맡아 개성연기를 보여온 그가 올해 칸영화제에서 배우로서 뿐만 아니라 감독으로서도 참여,화제를 모으고 있다.

베송이 감독한 개막초청작'제5원소'에서 악당 조르그로 등장했던 올드먼은 자신의 감독데뷔작'삼키지 말라'(원제:Nil By Mouth)가 공식경쟁부문 작품으로 선정돼 최우수작품상인 황금종려상과 최우수 촬영상격인 황금카메라상을 노리게 됐다.

'삼키지 말라'는 베송이 제작을 담당해'레옹'이후 친해진 두사람의 돈독한 우정을 과시하기도 했다.

'삼키지 말라'는 남부런던의 전형적 하류층 가정의 어두운 일상을 그려나간 작품.범죄와 마약,그리고 알콜중독과 가정내 폭력등이 시종일관 어두운 화면 속에서 전개되는 이 영화는 놀랍게도 올드먼이 자신의 어린 시절을 그린 자전적 작품이라고 밝혀 많은 관심을 모았다.

영화 끝 자막에“나의 아버지에 대한 추억에 바친다”고 한 이 영화는 바로 그 아버지가 알콜과 마약중독자로 어머니에게 걷잡을 수 없는 행패를 부리고 폭력을 휘두르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올드먼은 작품시사회후 가진 기자회견에서“나는 영화 속에 나오는 바로 그런 마을에서 성장했으며 영화 속의 선술집이 나의 아버지가 자신의 간을 파괴한 곳”이라는등 모든 로케장소가 실제 어린시절의 장소들이었다고 밝혔다.그는 또“등장인물중 내가 가장 동일시하는 인물은 아버지가 어머니를 때리는 모습들을 지켜보는 어린 딸”이라고 말했다.

그 자신 알콜중독 때문에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던 올드먼은 시나리오도 직접 썼는데“내 속에서 오랫동안 정리되지 않은채 떠오르던 이야기들을 시나리오로 썼다.매우 개인적인 이야기들이다.나는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병들어 있으며 알코홀리즘등 많은 이즘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한다”면서 영화제작이 자신에게는 하나의 치료과정이 되었다고 설명했다.

그는“영화가 완성되고 처음 보았을 때 난 극장을 떠날 수가 없었을 정도였지만 지금은 마음이 많이 가라앉았다”고 말하곤 어린시절을 회상하면서 감정이 복받치는듯 눈시울이 벌개지기도 했다.

“아버지의 죄악을 똑같이 아들이 저지를 수도 있다”면서 가정의 중요함을 역설한 그는 어머니에 대해서는“한번도 불평하는 것을 본 적이 없는 매우 영웅적인 여성”이라고 말했다.영화 속에 할머니가 노래부르는 장면이 있는데 그 노래를 자신의 어머니가 직접 립싱크했다고 설명했다.

어린시절에 대해 가지고 있는 회색의 어두운 이미지를 살리기 위해 수포 16㎜로 찍어 확대했다는 그는 해가 쨍쨍한 날에는 아예 촬영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그리고 작은 공간에 갇혀있는 듯했던 느낌들을 그대로 전달하기 위해 클로즈 업을 많이 사용했다고 밝혔다.

“영화 속에는 정치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지만 사실은 정치이야기가 많이 녹아있는 작품”이라는 그는 영화가 너무 설교적이 되지 않도록 하는데 주의를 기울였다고.가족들이 이 영화를 보고 그 솔직함에 매우 감동받았다고 전한다.

20년 가까이 배우를 했기 때문에 약간 질리기도 했는데 감독을 해보니“모든 일에 관여하게 돼 늘 자극을 받고 뭔가를 창조한다는 느낌이 강해 보람있는 작업이다.그리고 분장없이 입고 있는 옷 그대로 촬영장에 나갈 수 있어 무엇보다 좋다”며 웃었다.

한편 게리 올드먼이 지극히 속물적이면서 철두철미한 개인주의를 보여주는 타락한 형사로 출연하는'로미오 이즈 블리딩'이 한국에서 10일 개봉돼 그에 대한 관심이 더욱 증폭되고 있다. 칸=이남 기자

<사진설명>

'드라큐라''레옹''로미오 이즈 블리딩'등 다양한 작품의 주연과 조연에서 완전히 다른 이미지로 나온 게리 올드먼의 개성적인 얼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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