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넬슨 제독의 피, 다크 럼(Dark Rum)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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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지인들과 저녁 식사 중 우연히 우리나라의 독특한 음주문화에 대한 대화를 나누게 됐다. 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자연스럽게 폭탄주(爆彈酒, bomb shot)도 거론됐고 다양한 제조법은 물론 혼합비율에 따른 폭탄주의 종류까지 제법 심도 있는 대화가 오고갔다. 대화 도중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됐는데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그 이름 때문에 폭탄주가 군대에서 시작됐다고 오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음주를 권장한 군대는 없으며 거의 모든 군대에서 음주를 예외 없이 엄격히 규제했다는 것이다.

물론 예외적인 경우도 있다. 1740년 수병들의 괴혈병을 예방하기 위해 영국 해군 제독 에드워드 바논이 럼(Rum)을 물에 희석, 음료수로 사용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당시 유럽 각국의 해군은 식수를 오크 통에 보관했는데 용기 내부의 각종 미생물과 거친 해상환경으로 인해 악취는 물론 색까지 변해 수병들의 사기는 물론 건강까지 저해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럼과 같은 독한 술을 배급해 수병들이 물에 희석시켜 마시도록 했다. 이후 영국 해군은 물론 유럽 각국의 해군은 깨끗한 물을 보관하고 바닷물을 담수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기 전까지 럼과 같은 술을 해상 항해 시 식수에 혼합해 마시는 음료수로 수병들에게 보급했다.

그런데 럼, 특히 다크 럼(Dark Rum)은 영국해군은 물론 영국인들에게 대양을 지배한 과거 영광의 상징이자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상징하는 대표적 군주(軍酒)로 자리 잡고 있다. 특히 다크 럼은 ‘넬슨의 피’(Nelson's Blood)로도 불리는데 1805년 벌어진 트라팔가르 해전(Battle of Trafalgar)을 승리로 이끈 호레이쇼 넬슨 제독(Admiral Horatio Nelson·1758∼1805)의 시신을 럼이 가득 든 술통에 넣고 부패를 막았기 때문이다. 사실 수장(水葬)은 전사자에 대한 최대의 예우이자 고대에서 현대까지,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해군의 대표적인 장례 방법이다. 그러나 넬슨 제독이 전사하자 그의 충성스러운 부하들은 시신을 바다에 던지는 해군의 전통적 수장 대신 영웅의 죽음에 걸맞은 국장(國葬)을 위해 시신을 영국으로 가져갈 것을 결정했다.

정사(正史)에서는 ‘넬슨 제독의 충성스런 부하들이 술통에 시신을 넣어 부패를 막았다’라고 기록되어 있지만 야사(野史)에는 ‘영국에 도착했을 때 술통의 술이 몽땅 비어있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충성스럽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술이 필요했던 넬슨 제독의 부하들이 시신이 담겨있던 술통의 술을 조끔씩 마신 것이 계기가 돼 이후 다크 럼을 ‘넬슨 제독의 피’로 부르게 됐다는 주장이다. 서인도 제도가 원산지인 럼은 사탕수수에서 설탕을 얻기 위한 제당 공정에서 버려지는 폐액을 발효·증류한 술로 독특하고 강렬한 향과 맛이 특징이다. 1651년 서인도 제도 영국령 발바도스 섬에서 처음 생산된 뒤 18세기에 이르러 카리브 해를 무대로 활동한 선원들 사이에서 ‘거친 뱃사람들의 술’로 사랑받으며 널리 보급됐다. 제작 방법에 따라 흔히 다크 럼으로 불리는 헤비 럼(Heavy Rum)과 미디움 럼(Medium Rum), 라이트럼(Light Rum)으로 분류할 수 있다.

물론 럼에 대한 영국인들의 인식이 처음부터 호의적인 것은 아니었다. 사탕수수 폐액으로 만든 술, 흑인이나 마시는 싸구려 술이라는 인식이 강해 대중적 인기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럼을 즐기는 것도 거친 선원들이 대부분이어서 ‘해적의 술’로도 불렸다. 그러나 넬슨 제독의 전사 이후 영국인들의 사랑을 받으며 상류 사회의 명주(銘酒)로 인정받게 됐다. 이후 영국인들 사이에서 럼, 특히 진한 갈색과 강한 향을 자랑하는 다크 럼은 ‘넬슨의 피’로 불리며 명예와 국가를 위해 목숨조차 버린 그의 충성심을 찬양하고 애국심을 고취하는 술로 인식되고 있다. 물론 럼은 노예무역의 중요한 거래 수단이자 유럽의 아프리카 및 아메리카 식민지 침탈에 악용된 술이라는, 다소 상반된 이미지도 갖고 있다.

한편 우리나라 국어사전에도 당당히 등재되어있는 폭탄주는 양주와 맥주 또는 여러 종류의 술을 함께 섞은 혼합주(混合酒)의 하나다. 그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흔히 미국 노동자들이 즐겨 마신 ‘보일러 메이커(boiler maker)’를 우리나라 폭탄주의 원조로 본다. 우리나라 폭탄주와 제조방법이나 혼합되는 술의 종류 등에서 유사한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참고로 ‘보일러 메이커’란 이름은 술기운에 온몸이 순식간에 뜨거워진다는 뜻으로 노동자들 사이에서 돈도 적게 들고 빨리 취할 수 있어 큰 인기를 얻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폭탄주가 대중화 된 것은 1980년대 초반으로 국산 양주가 처음 등장한 83년 이후 정계와 법조계 등을 중심으로 음주문화의 한 형태로 정착됐다고 본다.

계동혁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