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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서 라면까지, 전문도서관만 1800여 곳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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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호 22면

일본 도쿄에 위치한 다마미술대학 도서관 내부. 깔끔한 실내와 탁 트인 창밖 풍경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이용자들에게 인기가 높다.

지난해 말 일본의 만화 애호가에게 낭보가 날아들었다. 메이지(明治)대학이 애니메이션·만화·게임과 관련된 책과 자료를 모은 ‘도쿄 국제만화도서관’(가칭)을 도쿄 지요다(千代田)구에 세우겠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한 우물 파기형 일본 도서관

2년 전 개관한 교토(京都) 국제만화뮤지엄을 제외하고는 만화와 애니메이션·게임을 집대성한 변변한 자료실이 없던 실정이었다. 메이지대는 만화책과 애니메이션 잡지는 물론 개인 수집가에게서 다양한 자료를 모아 ‘만화대국 일본’에 걸맞게 이 분야의 본격 연구 거점으로 만들 계획이다. 30년 전 일본 최초의 만화도서관인 ‘현대 만화도서관’을 세운 나이키 도시오(<5185>記稔夫) 일본 만화학회 이사가 평생 모아 온 20만 권의 만화잡지와 단행본을 기증하는 등 만화 애호가의 반응도 뜨겁다.

일본은 이렇게 한 분야의 자료를 집중적으로 모아 둔 ‘전문 도서관의 천국’이다. 일본 전문도서관협의회가 3년마다 발표하는 전문 정보기관 총람(2006년판)에 따르면 일본의 전문 도서관과 자료실은 1800여 개에 달한다. 여성 배우 전용극인 다카라즈카(寶塚)와 전통 가부키(歌舞伎) 등 무대공연 연구의 총본산인 이케다(池田) 문고, 신문·잡지·방송 등 미디어 매체 자료를 모은 사이토(彩都) 미디어도서관, 도쿄 우에노의 국제어린이도서관 등이 대표적이다. 국내에서는 쉽게 구하기 어려운 외국 의회 자료나 각 분야의 희귀 자료를 분야별로 쉽게 찾아볼 수 있어 인기다.

전국 전문 도서관 가이드북도 나와
현대사회가 복잡·다양해지면서 전문 도서관도 다양화하고 있다. 처음엔 정치·경제·사회 분야가 대부분이었지만 최근엔 문학·예능·만화·요리·패션·관광 등으로 영역을 넓혀 가고 있다. 도쿄 지요다구와 주오(中央)구 등 도심에 있는 전문 도서관만 32개에 이른다. 자동차도서관·음식문화도서관에 기계공업도서관도 있다. 전국의 전문 도서관 가이드북이 별도로 존재할 정도다.

세계 최초로 라면을 개발한 닛신 식품이 신주쿠(新宿) 도쿄 본사에 만든 ‘음식도서관’은 음식 관련 장서 1만 권 중 라면과 소바·우동·파스타 등 면류 관련 책만 1000권 넘게 소장하고 있다. 전국 라면 전문점 가이드북부터 에도시대와 메이지 시대 등 시대별 소면 변천사까지 국수에 관한 모든 자료를 모아 놨다.

도쿄 메구로에 있는 재단법인 야마하음악진흥회 자료실은 클래식과 팝을 망라한 2만3000점의 악보와 CD를 가수별·작곡가별로 정리해 뒀다. 도쿄 지요다구의 일본경제사연구소에는 1800년대 후반부터 현재까지 발간된 8000여 개 회사의 사사(社史)를 보관하고 있다. 문학도서관도 ‘일본 근대문학관’ ‘하이쿠(俳句)문학관’ 등으로 세분화돼 있다.

일본에서 전문 도서관이 활성화된 배경에는 대를 이어 한 분야를 연구하는 장인정신과 오타쿠(매니어)를 인정하는 일본 사회의 독특한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모든 것을 기록하고 후세에 자료를 남기는 꼼꼼한 국민성, 여기에 책을 가까이 두고 즐겨 읽는 독서문화도 한몫한다. 일본 정부도 적극 지원한다. 일본 국회는 2005년 문자·활자문화진흥법을 제정하고 전문 도서관 확대 예산을 별도 배정했다. 매년 10월 27일부터 약 2주간을 독서주간으로 지정하는가 하면 2010년을 국민 독서의 해로 정해 책과 신문 등 활자매체로부터의 이탈을 막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일본 최초 도서관은 1300년 전 생겨
도쿄 우에노(上野)공원에 가 보면 거대한 유리 케이스 안에 들어 있는 벽돌 건물과 마주하게 된다. 2002년 개관한 일본 최초의 국립 국제어린이도서관이다. 최초의 현대식 도서관인 제국도서관(1906년) 건물을 35년 증축해 국립국회도서관 지부 우에노 도서관으로 사용해 오다 97년부터 6년간 세계적 건축가 안도 다다오(安藤忠雄)의 대대적 리노베이션을 거쳐 2002년 어린이도서관으로 재탄생했다. 건평 6671㎡에 지하 1층, 지상 3층의 르네상스 양식 건물이다. 국내외 어린이 책과 관련 연구 서적 등 약 40만 권의 장서를 소장하고 있다.

‘어린이 책은 세상을 잇고, 미래를 개척한다’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아이들이 독서의 즐거움을 체득할 수 있도록 공간을 꾸민 점이 특징이다. 아이들 눈높이에 맞는 책 배치와 시대별 그림책 열람실, 유아·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어린이 방, 세상을 알아보는 방, 이야기 방 등 도서관 이용 목적과 연령에 따라 다양한 코너를 마련하고 있다. 취학 전 어린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 주는 프로그램도 있다.

도서관을 안내하는 견학 코스도 주 2회 마련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올해 국립도서관 예산 중 1억5200만 엔(약 22억원)을 편성, 국제어린이도서관 신관 건설 계획을 마련했다. 2012년엔 지하 4층, 지상 3층의 신관 건물이 들어서 총 80만 권의 어린이 관련 책을 소장한 세계적 어린이 전문 도서관으로 발돋움하게 된다.

일본 도서관의 원류는 710년대 나라(奈良)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문인이던 이소노가미 야카쓰구(石上宅嗣)가 세운 운테이(芸亭)다. 이후 12세기 가마쿠라(鎌倉) 시대 책들을 모은 가나자와(金澤) 문고가 세워졌고, 17세기 에도 시대에는 대여책방이 도서관의 역할을 했다. 1800년대 후반 메이지 시대에 도서관령이 공포되면서 공공도서관의 형태를 갖추게 됐다. 지금의 도서관 시스템은 60년대에 확립됐다. 일본도서관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정부와 지자체가 운영하는 공공도서관은 3100개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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