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불황을 어루만져줄 엄마가 필요해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96호 01면

엄마가 돌아왔다. 무한한 헌신과 희생, 강인한 생명력의 상징인 엄마가 지치고 낙담한 이 시대 사람들을 위로하는 키워드로 돌아왔다. 작가 신경숙씨의 장편소설『엄마를 부탁해』는 일평생 가족을 보살펴 온 칠십대 엄마의 이야기다. 세월과 기억의 저편에 묻어 두었던 전통적 엄마의 모습을 오랜만에 다시 불러냈다.

신경숙 『엄마를 부탁해』20만 부 팔린 까닭은

독자의 반응이 뜨겁다. 10만 부만 넘어도 대형 베스트셀러로 기록되는 요즘 문학시장에서 벌써 20만 부 넘게 팔렸다. 출간 두 달여 만이다. ‘엄마가 서울역에서 실종된 뒤에야 가족이 저마다의 기억으로 엄마의 삶을 돌아보는’ 줄거리다. 다들 엄마를 잘 아는 것 같았지만, 아니었다. 미처 몰랐던 엄마의 면면이 드러나면서 진한 그리움과 미안함을 안겨준다.

10여 년 전의 경제위기 때는 ‘아버지’가 있었다. 1996년 김정현씨의 소설『아버지』는 폭발적 반응을 얻었다. ‘암으로 시한부 생명을 선고받은 아버지가 가족 몰래 외로이 생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줄거리다. 소설은 사회적 화두로 떠오른 ‘고개 숙인 아버지’, 즉 각 기업의 구조조정으로 명예퇴직당한 중장년층의 비애를 대변하는 듯 보였다. 『아버지』는 아버지에 대한 연민을 아낌없이 표현했다. 고도성장기의 주역으로 활약하다 대거 퇴출당한 아버지들을 보는 당시의 사회적 시선과 비슷했다. 소설은 삽시간에 160만 부나 팔렸다. 영화·연극으로도 만들어졌다. ‘아버지 신드롬’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지금 ‘엄마’를 반기는 심리 역시 경제위기와 연관 짓는 시각이 많다. 경희대 최혜실 교수는 “엄마가 상징하는 유년기의 평온함으로 돌아가 위로를 얻고 싶은 마음이 이 힘든 시기와 맞아떨어졌다”면서 “요나 콤플렉스가 작용한 것”이라고 했다. 요나 콤플렉스는 현실에서 벗어나 엄마 배 속으로 돌아가려는 퇴행적 심리를 뜻한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 요나가 고래 배 속에 갇혔던 것에 빗댄 말이다.

서울대 김윤식 명예교수는 “가족 해체의 시대에 가족소설로 후퇴하는 것은 문학적으로 불행”이라고 말했다. 그는 “올 신춘문예 응모작들도 실험성이 사라지고 과거의 소박한 이야기로 돌아갔다”며 “외환위기 때나 지금이나 정상이 아닌 상황이라는 점이 이런 현상의 의미”라고 말했다.

명지대 신수정 교수는 다른 견해다. “아버지와 엄마는 사회적 맥락에서 의미하는 바가 다르다. 아버지가 강력한 권위체계를 상징하는 반면, 엄마는 그 바깥에 머물러 온 약자”라는 것이다. 신 교수는 “엄마를 통해 위안과 위로를 얻는 것만이 아니라 희생해 온 사람들, 약한 사람들을 충분히 배려하지 못한 데 대한 반성을 불러 내고 있다”고 말했다.

『엄마를 부탁해』는 이런 접점에 있는 작품이다. 과거의 어머니상을 복원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엄마 스스로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점에서는 지난해 큰 인기를 모은 드라마 ‘엄마가 뿔났다’와도 맞닿는다.

공교롭게도 이 드라마에서 엄마를 연기했던 배우 김혜자씨는 현재 봉준호 감독의 영화 ‘마더’를 찍고 있다. 철부지 아들을 살인죄에서 구하기 위해 세상과 혼자 싸우는 엄마의 이야기다. 이 힘든 시대가 다시 불러낸 엄마의 위력이 어디까지 미칠지 궁금하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