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게선 그림도 환불해주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5면

그림 시장이 꽁꽁 얼어붙은 지금, 화랑이 하나 문을 열었다. ‘환불보장·적품적소(適品適所)’를 내세운 맞춤형 그림 가게다.

주변에서 걱정이 많다. 그러나 갤러리 미교의 이승희(62·사진) 대표는 오히려 “불황에도 팔리는 그림이 있다”라고 자신했다. 그가 화랑의 문을 연 곳은 서울 훈정동 종묘주차장 1층의 100㎡ 공간이다. 인사동 화랑가에서 멀지 않다고는 하지만, 주차장 1층이란 공간은 그림 파는 곳으로는 다소 생뚱맞다.

“1970년대 한참 못 살 때만 해도 꽃집을 개업하면 ‘한가한 일을 한다’라며 주변에서 흉을 봤어요.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요. 꽃집 없는 동네가 없잖아요. 그림도 그렇게 될 날이 올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는 소위 말하는 ‘미술인’ 출신이 아니다. 영남대를 졸업한 뒤 대기업에 근무할 때 그림에 눈을 떠 15년 전부터 작품을 사들인 인연뿐이다. 주요 경매업체에서 소품 위주의 그림을 사모으거나, 전시장에서 작가에게 그림을 산 정도다. 미술계에 아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다.

그런 그가 이처럼 과감한 선택을 한 것은 “많은 사람이 유명 작가의 이름만 보고 그림을 구입할 뿐, 걸어둘 장소에 어울리고 의미가 있는 그림을 고르거나 작품을 보는 안목이 부족하다”라는 생각에서다. 그의 화랑은 작가를 택해 개인전을 열거나, 주제를 가진 전시를 보여주는 본격 미술 공간이 아니다. 벽에 혼수용·기업용·선물용 등의 용도를 적어 두고 그 밑에 그림을 가득 걸었다. 말 그대로 그림 가게다.

가격은 대체로 100만~200만원선. 위작 의혹이 끼어들 여지가 별로 없는 소품들이다. 이 정도 돈을 보고 위작을 그리는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씨는 “그간 경매 또는 작가들로부터 직접 구입해 혹시나 위작이 끼어들 가능성을 배제했다”라고 다시 한 번 못을 박았다. 특히 “작품을 사기는 쉬워도 되팔기가 어려운 게 미술시장의 생리이지만, 나는 환불보장을 원칙으로 화랑을 운영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글=권근영 기자, 사진= 김도훈 인턴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