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영란은행의 독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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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영국 블레어 노동당정부의 고든 브라운재무장관은 중앙은행인 영란은행(뱅크 오브 잉글랜드)안에 금융정책위원회를 설치해 정부가 갖고 있던 금융정책의 결정권한을 대폭 이양한다고 발표했다.그야말로 영란은행이 설립된 1694년 이래 3백년만의 대사건이다.이는 인플레억제를 위해 중앙은행의 권한을 대폭 강화하는 것이 유럽통화통합가입의 전제조건인 점을 의식한 조치다.영국 언론들은 영란은행의 혁명이라고 이번 조치를 부르고 있다.

주된 내용을 보면 중앙은행이 갖게 될 이자율책정과 환율운용및 물가안정을 위한 통화정책의 결정폭이 이전보다 훨씬 커지게 됐다.이번 조치는 새롭게 유럽담당부서를 신설해 적극적으로 유럽통합에 참여한다는 블레어총리의 개방정책과 아울러 영국경제의 국제화를 한층 자극할 것으로 보여 벌써부터 유럽 전체가 환영하고 있다.

영란은행의 혁명적인 독립성제고는 그 내용과 조치의 신속함에도 전세계가 놀랐지만 이같이 중요한 개혁을 결정하는 과정이 너무 간단해 여러 모로 본받을만 하다.즉 브라운재무장관이 조지영란은행총재와 만나 개혁안을 제안하고 바로 실시하는데 합의했다는 것이다.당장은 현행법을 그대로 두고 운용을 통해 개혁안을 실천에 옮기고 곧 새의회에 영란은행법의 개정안을 제출,조기에 통과시킨다는 것이다.여기에는 어디에도 재무부와 영란은행이 서로의 밥그릇을 다투는 모습은 보기 어렵다.

영국 경제를 책임지는 가장 중요한 두 사람이 진정으로 영국경제의 장래를 보고 합의해가는 모습은 부럽지 않을 수 없다.

영란은행의 독립성 수준은 이제 미국의 연방준비제도이사회,독일의 분데스방크와 아울러 명실공히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게 됐다.최근 일본도 장기간의 논란끝에 대장성이 갖고 있던 상당한 권한을 중앙은행에 주는 방향으로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세계화가 진전될수록 각국의 통화가치안정이 무엇 보다 중요하다는 것이 이같은 큰 흐름의 배경이다.우리도 금융개혁위에서 토의중인데 타산지석으로 삼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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