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철.김기섭씨 정권차원 비호 의혹 -이성호씨 귀국지연과도 有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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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사법처리가 확실시되는 김현철(金賢哲)씨와 김기섭(金己燮)전안기부운영차장이 검찰출두를 앞두고 수사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정부 고위인사를 극비리에 함께 만났다는 사실은 아직도 두사람이 정권차원의 비호를 받고 있음을 증명해준다는 점에서 충격을 주고 있다.특히 김기섭씨는 안기부 재직중 한보사건 수사가 시작되자 검찰간부를 통해 한동안 사실상 수사를 지휘한 것으로 검찰 내부에 알려졌을 정도로 막강한 힘을 과시했었기 때문에 이들의 만남에 대해 검찰은 비상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극비회동에서는▶현철씨를 적당한 선에서 사법처리해 정권위기에서 탈출하고▶金전차장은 사법처리 대상에서 제외하며▶두사람 신상에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는 이성호(李晟豪)전대호건설사장의 귀국을 막는다는 것등이 논의됐을 것이란게 검찰의 분석이다.

한편 검찰은 문제의 고위인사가 검찰에 영향력을 행사하는등 극비회동에서 합의된 계획을 이미 실행에 옮기고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이들이 만난 4월28일이후 검찰 수뇌부와 수사팀 사이에 두사람의 사법처리 여부.시기를 둘러싸고 서로 다른 목소리가 나온 것이나 수사 관계자들이“일부 여권 핵심인사들이 검찰 수뇌부에'여론에 밀려 현철씨를 사법처리한다면 적당한 범죄사실로 빨리 마무리하고 金전차장은 구속하면 안된다'는 주장을 펴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바로 이를 입증한다는 것이다.

또 이성호씨가 귀국을 꺼리는 것도 이들의 회동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현철씨가 받은 이권청탁의 대부분을 金전차장이 관계기관을 통해 해결했고 이때 받은 돈을 李씨가 관리한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에 그의 귀국은 현철씨는 물론 金전차장에게도 최악의 상황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이밖에 현철씨의 소환시기를 둘러싼 줄다리기도 이들의 회동이후 표면화됐다는 분석도 있다.4월말부터 갑자기 검찰 수뇌부는 물론 청와대 고위관계자들이 수사일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구동성으로 5월초 현철씨를 소환할 것이라고 공언한 것이 이상했다는 것이다.당시 수사팀은“6개월을 조사한뒤 소환해도 범죄사실을 모두 캐내기 힘든데 빨리 소환하라는 것은 수사하지 말라는 것과 같다”며 맞선 것으로 알려졌다.이때문에 수사팀은 소환시기를 최대한 늦추면서 金전차장의 사법처리 여부에 대해선 언급을 회피한채 은밀하게 그의 비리를 추적하는 어려움을 겪은 끝에 겨우 현철씨와 金전차장이 한솔그룹에 출처가 의심스러운 뭉칫돈을 맡겨 관리해온 사실을 밝혀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아무튼 검찰 수사대상에 올라있는 두사람을 정부 고위인사가 비밀리에 만나 대책을 논의했다는 것 자체가 현 정부의 도덕성에 큰 상처를 입힐 것은 물론이지만 이같은 모임이 과연 세사람만의 자체적 결정으로 이뤄졌는지도 관심거리가 아닐 수 없다. 정철근.이상복 기자

<사진설명>

워커힐 빌라 주차장의 당일 주차일지.경비원들은 펄.제이드등 다른 빌라 입구에 주차해 있던 차량들은 객실 호수와 차량번호.색깔등을 정확히 기록해 두었으나 김현철씨등 세사람이 만난 2618호실의 경우 차량번호 없이 VIP들이 습관적으로 표현하는'투숙함'으로만 기재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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