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 끊자” 특허법원의 특별한 선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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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특허법원 판사와 직원들이 ‘청렴 선언’을 공개적으로 결의하고 나섰다. 특히 이번 선언은 “형식적이고 추상적”이라는 지적을 받았던 기존의 자정 결의 등과 달리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명시해 실현 가능성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8일 특허법원(법원장 박국수)에 따르면 이 법원 판사 17명과 직원 50여 명은 지난해 12월 29일 각각 전체 회의를 열고 ‘청렴 유지 등을 위한 우리의 선언’을 채택했다. 법원 측은 7일 홈페이지를 통해 이 선언문을 공개했다. 판사·직원들은 선언문에서 “청렴한 공직 사회를 조성하고, 부패 및 부조리에 대한 자정 노력의 일환으로 특허법원이 청정 무공해 법원을 지향하기 위해 부패 방지에 대한 확고한 청렴 의지를 대외적으로 표명한다”며 여섯 개의 실천 방안을 제시했다.

우선 “우리는 자기 또는 타인의 부당한 이익을 도모하기 위한 상급자의 지시를 이행할 의무가 없으며, 자기 또는 친족의 이해관계로 인한 공정한 직무 수행이 어렵다고 판단되면 소정의 절차를 거쳐 직무를 회피한다”고 못 박았다. 또 ▶직무 수행에 있어 지연·혈연·학연 등을 이유로 특정인에게 특혜를 주지 않고 ▶정치인·정당으로부터의 강요나 청탁에 좌우되지 않으며 ▶직무와 관련해 알게 된 정보를 자기 또는 타인의 재산상 거래나 투자에 이용하지 않는다고 규정했다.

경비 사용의 경우 “여비·업무추진비 등 공무 활동을 위한 예산을 목적 외의 용도로 사용하지 않으며, 관용차량 등의 공유물을 사적인 용도로 사용·수익하지 않는다”고 했다. 인사에 있어서는 “자기가 다른 직원의 임용·승진·전보 등 인사에 관해 부당한 영향을 미치기 위한 청탁이나 직위를 이용한 개입을 하지 않으며, 자기 또는 타인의 부당한 이익을 위한 알선·청탁·소개 등을 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선언을 지킬 대상도 판사나 직원뿐 아니라 그 가족으로 확대했다. “우리는 물론 배우자, 직계 존·비속은 직무 관련자로부터 금전·부동산·선물 향응 등 금품을 받지 않으며 금전을 빌리거나 부동산을 무상으로 대여받지 않는다”고 한 것이다.

이 법원 박국수 원장은 선언 배경에 대해 “국민의 지지 없이 사법부가 존립하기 어려운 만큼 청렴성과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는 데 인식을 함께했다”며 “변호사와 변리사 등 관련 당사자들이 법원의 의도를 정확히 이해할 수 있도록 우리의 의지를 알리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대법원규칙 ‘법관 및 법원공무원 행동강령’에서 실천 방안을 추려낸 뒤 법관 회의 등을 통해 선언문을 마련했다는 설명이다. 판사와 직원이 선언을 위반하면 징계를 받게 된다. 법원 측은 법관·직원들에 대한 청렴 교육을 지속적으로 실시할 계획이다.

그간 각 부처와 지방자치단체·공기업 등에서 자정 결의나 청렴 선언이 잇따랐지만 비리 사건이 터진 후 비판 여론을 무마하는 차원에서 나온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일회성 쇼’에 그친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지난해에도 각종 결의와 선언이 이어졌으나 ‘부패와의 전쟁’ ‘부패 제로’ ‘윤리경영 선포’ 등 구호가 무성하고 처벌 규정만 강화했을 뿐 구체적인 실천 방안은 제시되지 않았다.

권석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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