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유대계 시위 격화 … 프랑스 비상경계령 내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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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습 여파로 프랑스에서도 이슬람계와 유대계의 충돌이 격화되고 있다. 프랑스에는 약 700만 명의 이슬람계와 60만 명 이상의 유대계가 거주하고 있다. 이들은 이전에도 자주 크고 작은 갈등을 빚어 왔다. 특히 최근 이슬람계 밀집 거주 지역인 파리 북부 지역에서 유대계가 상권을 접수하기 시작하면서 갈등은 한층 과격해졌다. 양측이 모두 폭력집단을 만들어 패싸움까지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6월에는 10대 유대인 소년이 흉기에 찔려 사망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발생한 가자 사태는 기름을 붓는 격이 됐다. 5일(현지시간) 밤에는 자동차 한 대가 남프랑스 툴루즈 외곽의 한 유대교당 울타리로 돌진해 들이받은 뒤 운전자가 차량에 불을 질렀다.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차량은 전소됐다. 3일에도 남부 도시 툴롱의 유대인 종교시설 인근에서 방화 사건이 일어났다.

4일에는 전국 각지에서 이스라엘을 규탄하는 아랍계의 집회가 이어졌다. 이슬람계 7만여 명이 모여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침공을 비난했다. 마르세유에서는 집회 참가자들이 이스라엘 국기를 불태웠고, 도시 곳곳에 ‘살인마 이스라엘’ ‘하마스여 단결하라’ 등의 거리 낙서를 하기도 했다. 북동부의 메츠에서는 200여 명의 아랍계 시위대가 유대교당에 진입하려다 경찰에 의해 해산되기도 했다.

반(反)유대교 시위는 주로 아랍계가 많이 거주하는 남프랑스 도시에서 벌어졌지만 점차 북상하고 있다. 지난주에는 파리 시내 곳곳에서 시위가 벌어져 20여 명이 경찰에 연행됐다.

유대계 역시 거칠게 맞대응하고 나섰다. 4일 파리에서 벌어진 유대계의 시위에선 흉기를 소지하고 있던 세 명이 경찰에 적발됐다. 경찰은 유대계 시위대가 수적으로 열세여서 이들이 이슬람계와의 충돌 상황에 대비해 무기를 소지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프랑스 정부는 양측의 대규모 충돌과 파리 외곽 이슬람계 밀집 지역에서 소요가 벌어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그래서 미셸 알리오-마리 내무장관은 6일 오전 지방자치단체에 공문을 돌려 비상경계령을 지시했다. ‘유대계의 주요 시설에 대한 경계를 강화하고 이들에 대한 보호책을 강구하라’는 내용이었다. 알리오-마리 장관은 이날 프랑스 이슬람 연합과 유대인 연합을 차례로 방문해 법을 준수해줄 것을 당부했다.

파리=전진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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