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추억으로가는간이역>23. 동두천시 소요산역 (1)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3면

“나는 눈이 작고 볼이 두터운 그 여자와 함께 ㄷ읍의 거리에 내려섰다.백색의 햇빛이 거리의 속속들이에 스며 있어 거리는 마치 한밤중인 것처럼 조용해 보였다.행인 몇 사람이 눈에 띄었으나 그들도 마치 햇빛의 일부분처럼 보였다.햇빛의 일부가 움직이고 있는 것 같다고나 할까.”-조해일의'아메리카'에서. 의정부에서 시간마다 출발하는 비둘기열차가 소요산역에 선다.기차가 역으로 들어설 때 이미 역사며 주위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시야가 넓어서가 아니다.그만큼 시선을 강하게 끌어들이는 풍경이 없기 때문이다.플랫폼에 있는 벤치라야 고작 열개나 될까.그나마 오랫동안 앉았던 흔적이 없어 녹슨 먼지들이 뿌옇게 쌓여 있다.

평일 오전.등산객 20여명이 기차에서 내린다.그들과 함께 역 광장으로 걸어나오면서 소요산역에서 볼 것이라곤 혹 햇빛 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봄볕은 한낮이 아니었지만 눈부실 만큼 따사롭다.

소요산역의 행정구역은 동두천시소요동.소요산역에는 이상순(65)씨가 역장이며 청소부며 표파는 역원이다.그는 철도청공무원은 아니다.대매소 역할을 하는 용역일꾼이다.

“작은 마을을 역세권으로 하니 이용하는 승객들이 보잘 것 없지요.소요산 등산객이 대부분입니다.평일에는 3백~4백명,휴일에는 5백~6백명의 등산객들이 이 역을 이용합니다.”“소요산이 어디 있지요?”“길만 건너면 바로 소요산 입구예요.” 서울상계동에서 왔다는 한 주부 등산객이 손을 들어 광장 맞은편을 가리킨다.그녀의 흰 손가락 끝에 둥그레한 산모퉁이 두 개가 보인다.저 산모퉁이로 들어가면 계곡이 나올 것이고,폭포수가 시원스럽게 떨어질 것이다.그런 생각이 들자 다소 상쾌해졌다.

싱그러운 신록이 벌써 몸으로 파고 든다.소요산은 벌써 봄의 한가운데 있다.소요산은 원효와 요석공주의 이야기가 스며 있는 산이다.요석공주가 머물렀다는 별궁터와 원효가 수도했다는 원효대도 있다.정상인 의상봉 옆에 있는 공주봉 역시 원효가 요석공주를 두고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어찌됐든 원효는 사랑하는 요석공주를 곁에 두고 소요(逍遙)하면서도 면벽수도할 수 있었다니 고승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이 든다.

소요산을 하산해 동두천 쪽으로 발길을 잠시 돌리면'속세'가 나온다.리틀 시카고.한때 7천명에 달하는'양색시'와 수백개의 숙박업소로 이 나라에서 가장 번화하고 활기띤 도시중 하나였다.

“길폭이 좁아지면서 우선 곳곳에 무슨무슨 테일러니 무슨무슨 폰 숍이니 무슨무슨 클럽이니 하는 영문자로 된 간판들이 도형감(圖形感)있게 생생한 모습으로 내게 얘기를 걸어왔다”. 조해일은 그의 소설'아메리카'에서'ㄷ읍'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ㄷ읍'은 물론 동두천을 말한다.

소요산 입구 바로 옆에는'캠프캐슬''캠프캐시'라는 미군부대가 있다.부대 앞으로는 아직도 '인디언헤드스쿨''보스턴숍''퀸스숍''힐튼개스턴테일러''텍사스 바비큐'등 영문간판이 즐비하다.그런 영문간판 사이로 '꽃선녀처녀보살'이라는 토종간판도 보인다.아마도 소요산의 영험함을 얻은 보살인가 보다.

동두천시는 아직 기지촌 모습을 벗어나지 못했다.하지만 예전처럼 시끄럽던'리틀 시카고'와는 견줄 수 없을 만큼 발전된 모습으로 바뀌었다.

미군을 상대로 한 옷가지와 신발과 햄버거 따위를 파는 가게가 어지럽게 들어서 있던 좁은 길목은 이 시에서 가장 넓은 도로로 확장되었고 양쪽에는 현대식 상가가 들어서 있다.서울의 이태원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산뜻하다.

소요산역에서 내리면 전쟁이 만든 도시와 원효가 수도했다는 소요산을 동시에 만나게 된다.소요산 산행에 나선 빨간 조끼의 등산객들이나 동두천 시내에서 만난 빨간 스커트의 여인들이나 모두 화사한 봄볕을 받으며 걸어가고 있었다.

소요산=이순남 기자

<사진설명>

평일 오전 완행열차인 비둘기호에서 내린 등산객들이 소요산역사로 걸어나오고 있다.경원선의 간이역 소요산역은 동두천시내와 소요산을 지척에 두고 있다.이용객은 대부분 등산객으로 하루 평균 3백~4백명 정도.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