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컷>PC통신 성화에 '별은 내가슴에'등 대본 수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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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시청자가 작가인가'. 최근의 TV드라마를 보면 이런 생각을 지우기 힘들다.시청자를 위해서라면 대본에 없던 인물을 등장시키고 시청자가 원하는 커플이 탄생되는 것쯤은 아무일도 아니다.

시청자의 힘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실감케 하는 경우는 뭐니뭐니 해도 MBC 미니시리즈'별은 내 가슴에'. 여론의 신흥배출구 PC통신을 통해 10대를 중심으로 한 젊은층이 세력 과시를 하면서 드라마 전체의 줄거리를 완전히 바꿔 버린 경우다.

원래'별은…'의 줄거리는 술에 취한 민이(안재욱)가 충동적으로 연이(최진실)의 친구 순애(전도연)와 하룻밤을 보내고 임신한 순애를'책임지기 위해'결혼하는 것.연이는 늘 자신을 돌봐준 준희(차인표)와 연결될 예정이었다.

이에 대해 신세대(?)시청자들은“요즘 시대에 걸맞지 않게 한번의 실수로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과 결혼한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 소리냐”며 격렬히 반대했다.

“연이와 민이가 연결되길 기도하겠다”는 간절한 애원부터“둘이 연결되지 않을 경우 자살하겠다,MBC를 폭파하겠다”는 협박까지'별은…'를 둘러싼 극성 시청자들의 의견이 폭주했다.결국 MBC가 두손을 들어 이 드라마는 민이와 연이가 포옹하는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렸다.

'별은…'가 젊은층의 승리였다면 MBC드라마'애인'은 보다 나이 많은 층의 승리였다.

'기혼남녀의 불륜이냐,순수한 사랑이냐'를 놓고 설왕설래했던'애인'은'두 남녀는 각자의 가정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보수적이고 도덕적인 여론의 힘에 밀려 사랑의 결실을 맺을 수 없었다.마지막 방송 당시 역대 드라마 사상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했던 KBS 주말연속극'첫사랑'.'찬혁(최수종)과 효경(이승연)일까,찬혁과 신자(이혜영)일까'를 놓고 수개월동안 의견이 분분했으나 결국 신자와의 결합을 암시하는 형식으로 여운을 남긴 채 끝을 맺었다.

물론 드라마의 인기를 위해서는 시청자 의견의 적절한 반영도 필요하다.시청자와의 끊임없는 교감,의견교환을 통해 보다 나은 결론을 맺을 수 있다면 이때의 시청자는 충실한 옴부즈맨의 구실을 해내는 것이다.

그러나 PC통신을 통해 즉흥적이고 충동적으로 토해내는 의견이 이성적이고 성숙된 바람직한 여론이라고 보기는 힘들 것이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방송사의 우유부단한 태도다.

시청자 의견에 끌려다니다 보니 녹화 이틀전까지 대본이 완성되지 않은 적도 있고 결말이 결정되기까지의 난항으로 인해 결말 부분의 스토리 진행은 숨이 찰 정도의 빠른 템포로 진행되는 해프닝을 낳기도 했다.

또 시청자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작위적인 상황을 애써 연출하는 무리수를 두어 가면서까지 전체 대본을 급조하는 것은 작품의 완성도보다 당장의 시청률만을 의식하는 것만 같아 씁쓸하다.

더욱이 드라마의 사전제작이 서서히 정착돼가는 지금 시점에 말이다.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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