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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문학평론가 권택영.작가 이문열씨 - 소설 '선택' 무엇이 문제인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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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우리 시대 최고의 화제작가 이문열씨의 장편'선택'이 또다시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지난달말 선보인 이 작품(민음사刊)은 조선시대 정부인 장씨의 삶을 되돌아보며 여성들의 가치관이 무엇인가를 묻고 있다.여성으로서의 재능을 일단 접어두고 자손 많이 낳아 후손 번창시키는 현모양처형이 지순지고인양 정부인을 통해 현대여성들을 일갈(一喝)하고 있는 부분이 논쟁을 불러일으키며 많은 여성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그럼에도 이 작품은 출간 한달만에 8만여부가 팔려나가며 특히 여성 독자들을 사로잡고 있다.이에 작가 이씨와 문학평론가 권택영씨의 대담을 통해 이 작품의 무엇이 문제인가를 따져본다. [편집자]

▶권택영='선택'을 읽고나니 여자로서 호통 한번 크게 당한 느낌입니다.4백년전 정부인이 나타나'이 땅의 딸들은 들어라'며 조목조목 야단치고 있으니 이 시대 여성으로서 스트레스를 안받을 수 없겠지요. ▶이문열=저 자신도 다 써놓고 검토하며 서문등 일부가 좀 과격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무자비해 변명도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그러나 이 작품은 반(反)페미니즘 성향은 분명 아닙니다.이렇게'큰 여자'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권=물론 정부인의 삶에는 깊은 감동도 받았습니다.봉건시대에 태어나 인내와 고통으로 자손들을 훌륭히 다 기르고 사회를 위해서도 일하고 마지막 문집까지 펴내는 삶이 감동적으로 다가오며 여성들에게 용기를 주고 있습니다.그럼에도 앞부분부터 논리적.논란적으로 그 분의 음성을 빌려 여성주의를 질타하고 있으니 여성 독자들의 마음이 편할리 있겠습니까. ▶이=현모양처 이야기가 우리 시대에 읽히겠습니까.'웬 신사임당?'하고 고리타분한 것으로 들리겠지요.해서 강한 느낌을 주기 위해'교술적.의사회고록적'형식과 의고체 문체를 취했습니다.물론 무턱대고 가정을 뛰쳐나오는 것을 여성해방으로 여기는 일부 그릇된 여성주의자들에게 한마디 하기 위한 방편으로서도요. ▶권=많은 독자들이 작가가 여성의 처지를 몰라도 너무 모른다고 할 것입니다.아무리 반여성주의자 여성이라도 여자는 남자보다 여자의 처지를 잘 압니다.그런데도 정부인의 말을 빌려 그 뒤에서 이문열씨라는 중년남성이'이 땅의 딸들''너희들'하며 여성을 일반화시켜 야단치고 있는 것은 문제 아닙니까. ▶이=진지하고 성실하게 추구되는 여성운동에 이의를 단 것은 결단코 아닙니다.일부 잘못된 여성해방론자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그것이 다인양 해서 저도 그들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기 위한 방편입니다.인간세상이란 인간들에 의해 이뤄지는 것 아닙니까.따라서 인간을 낳고 기르는 여성은 세계를 창조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당대 여류문장가가 되기를 포기하고 스스로 어머니가 되기를 선택했던 그 정부인의 후손은 지금 1천6백여명에 이르고 있습니다.우리 집안의 할머니인 그 분은 할아버지보다 먼저 제도 올리고 후손들에게서 종교처럼 떠받들어지고 있습니다.그 분의 이야기를 통해 여성의 위대성,진정한 페미니즘을 알리기 위해 이 작품을 썼습니다.

▶권=물론 여성운동 자체도 점검.반성해볼 부분이 있습니다.그러나 민주.평등사회에서 남녀가 똑같은 교육을 받았는데도 성년이 되어 사회에 나와보면 그 차별은 여전히 심각합니다.직장에서도,가정에서도,심지어 여성의 의식 속에도 남자에 대한 종속심리가 여전합니다.오죽하면 돈많고 능력있는 사람에게 시집가라고 딸한테 권하겠습니까.그런 남자에게 가서 편히 기대라는 것 아니겠습니까.여성운동은 여성 스스로 자기 삶과 육체에 자긍심을 갖도록 하는 것입니다.남자와 적대적이 아니라 여자로서 할 수 있는 일과 개성을 살릴 수 있는데서 자긍심.자부심을 갖게 하는 것 말입니다.

▶이='선택'도 그걸 추구하고 있습니다.어느 여성학자는 이 작품이 그런 여성,그 여성성의 위대함을 복원시켜놓았다고 평하더군요.반면 어느 여성 평론가는 후배 여류작가들에 대한 질투 혹은 미래사회에 대한 두려움이 이런 작품을 쓰게 만들었다고 분석하더군요.그러나 내가 후배 작가들을 왜 질투하겠습니까.하지만 솔직히 미래사회에 대한 두려움은 있습니다.이혼증가율과 청소년 비행증가율은 비례합니다.이혼으로 결손가정이 돼 비행청소년이 늘어나고 그런 세대가 이끌 미래가 솔직히 두렵습니다.

▶권=그러나 이혼이나 결손가정에 대한 책임이 여성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또'황홀한 반란''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등 여성작가들의 소설 제목을 그대로 드러내놓고 비난하고 있는 것도 문제 아닙니까. ▶이=남성에 대해 한마디도 안하고 여성만 갖고 이야기하다보니 화낼만도 하겠군요.물론 남성이 정당하다는 것은 아니고 작품 구성상 여성에게만 초점을 맞추었을 뿐입니다.남성에 대한 이야기는 내 작품의 숙제로 남겨진 셈입니다.여성작가의 소설 제목을 그대로 딴 것은 그 말들이 그릇된 여성운동의 상징성.비유성을 더할 나위없이 잘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소설속에서 풀어서 쓰면 수십장으로도 모자랄 말들을 이 제목이 압축하고 있어 빌려 썼을 뿐입니다.혹 작가에게 해를 끼쳤다면 죄송합니다.

▶권=여성운동의 여러 방향에 대해 다양성은 반드시 인정돼야 합니다.이러이러 해야 한다는 것은 또다른 억압 아니겠습니까. ▶이=소설'선택'에서 나는 한 여성의 삶을 선택해 보여준 것입니다.다시한번 저는 반여성주의자가 진정 아닙니다.이 오해만큼은 풀렸으면 합니다. 정리=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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