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이달라진다>5. 끝. 방송변화가 미치는 영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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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98년 봄날 저녁 회사원 김모씨의 아파트.모처럼 일찍 들어온 김씨는 거실에서 부인과 70년대를 그린 드라마를 본다.

하드록을 좋아하는 중학교 3학년과 1학년 두 딸은 방에서 컴퓨터로 다른 프로그램을 즐기고 있다.VOD(Video on Demand)서비스를 제공하는 외국 방송사에 인터넷으로 접속해 뮤직비디오를 감상중이다.

VOD는 방송 프로그램들을 인터넷에 연결된 컴퓨터에 실어 놓고 시청자들이 언제든지 접속해 볼 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아이들은 몇달전부터 여기에 재미를 붙이더니 지금은 아예 TV를 보지 않는다.

인터넷을 이용하면 철저히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프로그램만을 언제든지 골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직장생활에 쫓기는 여느 봉급 생활자처럼 김씨가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은 어쩌다가 같이 TV를 보는 것뿐.그 시간마저 빼앗기고 있는 것이다.

가족 뿐만 아니라 사회적 분열위기가 조성된다는 관측도 있다.방송이 VOD등 주문형으로 바뀌면 사람들은 점점 더 극단적인 자기 취향만을 찾게 된다.이들은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끼리는 서로 정보를 교환하며 더욱 강한 유대감을 갖게 되지만 다른 동호 집단에는 철저히 무관심한 행태를 보이게 된다는 것. 결국 사회적 결속력이 크게 떨어진다는 우려다.연세대 김영석(43.신문방송학과)교수는“특히 정치에 대한 일반인들의 무관심으로 투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등 정치위기까지 내다보는 학자들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같은 우려들이 지나친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산업의 분업화.전문화가 이뤄질 때도 전문가들은 분업집단간 충돌을 예견했으나 빗나갔다는 설명이다.

당시의 분열론은 같은 일에 종사하는 집단끼리 극단적으로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게 될 것이라는 이유였다.그러나 분업은 다른 분야의 사람들이 하나라도 없으면 전체를 만들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오히려 서로를 존중하는 경향을 불러일으켰다.

연세대 김용학(44.사회학과)교수는“공통관심사를 가진 집단이 점점 강력해지고 이들간의 이질화는 심해질 것”이라며“그러나 이질화는 반대로 서로에 대한 의존도를 높여 새로운 전 사회적 연대감을 낳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권혁주 기자

<사진설명>

가족이 모여 TV를 보고 있다.앞으론 이런 정경도 보기 드물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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