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식량난 다급 유화국면 전망 - 황장엽 서울 안착이후 南北관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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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황장엽(黃長燁)전 북한 노동당비서의 서울 안착이 앞으로의 남북관계에'태풍의 눈'으로 작용할 것인가.

黃씨는 서울도착 인사말에서 한반도에서의'전쟁방지'를 강조하고 북한에 대해'남조선혁명'노선의 포기및 개혁.개방의 채택을 호소했다.그러면서 그는 북한이 지상낙원의 건설은 커녕“빌어먹는 나라로 전락했다”고 비판했다.

黃씨는 북한의 대남 전쟁도발 계획,가혹한 주민통제및 심각한 식량난의 실상은 물론 북한지도부의 행태와 정보를 생생하게 우리 정부에 제공할 것으로 짐작된다.

또 주체사상의 창시자인 그의 망명으로 북한은 이념체계의 허구성이 드러나 체제유지에 적지않은 타격을 받았고 또 받을 것이 틀림없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북한이 그의 서울 도착에 불만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그렇다 하더라도 그의 망명은 남북관계 개선의 싹이 조금씩 움트는 현정세의 흐름을 되돌릴 것같지는 않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우리 정부는 남북관계의 유화국면을 유도하기 위해 黃씨의 공개활동을 당분간 자제시키고 黃씨 망명사건이 남북관계의 악재로 작용되지 않도록 배려할 방침이다.

북한도 망명사건 이후 4자회담에 성의를 보일 뿐만 아니라 黃씨의 서울도착 일정이 밝혀졌음에도 한적(韓赤)의 남북적십자 회담제의를 이례적으로 하루만에 수락했다.

이에 따라 남북적십자 대표들이 대북 구호식량.물품 지원문제 협의를 위해 다음달초 베이징(北京)에서 이마를 맞댈 예정이다.한반도 평화를 논의하기 위한 4자회담의 예비회담도 5월에 열릴 것으로 기대된다.예비회담 성사는 대규모 대북 식량추가지원과 맞물려 있다.

북한의 태도 변화에는 명백한 이유가 있다.식량난의 긴급한 해결과 북.미관계 개선을 통한 체제안정장치 마련 때문이다.

북한은 黃씨 망명사건에 집착하면서 대결자세를 보이다가는 자칫 고립을 자초하고 나아가 정권과 체제에 심각한 위협이 초래될지도 모른다고 우려하는 것 같다.

일련의 흐름을 보면 북한으로서도 남북대화에 응하지 않을 수 없음이 분명하다.한국정부가 최근 민간차원의 쌀지원과 기업의 대북지원 참여를 허용한 것도 북한에 좋은 신호가 된 것으로 보인다.

남북적십자 대표의 베이징접촉은 정치적 함의가 크다.비록 당국간 대화가 아니고 한반도내의 개최도 아니지만 남북 당국간 회담의 물꼬를 트는데 유효하게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남북한 간에는 냉각기에 대화를 트는 수단으로 적십자접촉을

활용해온 전례가 있다.그동안 북한의 태도를 감안하면 앞으로 펼쳐질 대북 쌀지원을 위한 실무협의에서도 우여곡절은 겪을 것이다.그러나 대화의 창이 일단 열린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앞으로 黃씨 망명사건의 파장은 남북관계의 전반적인 흐름과 궤를 같이할 것이다.黃씨와 김덕홍(金德弘)씨가 풀어놓을지도 모를 남한내 북한첩자 리스트에 혹 정치권의 관련이 드러나면 일대 회오리를 몰고올 것이 틀림없다.

이 경우 북한의 극심한 반발도 예상된다.黃씨 문제가 남북간의 또다른 불씨로 돌출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유영구 전문기자〉

<사진설명>

“환영합니다”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국제담당비서가 20일 오전 서울공항에 도착,남한에

정착중인 탈북자들로부터 꽃다발을 받으며 인사하고 있다. [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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