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브이세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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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0면

이번에는 윤수일의'아파트'가 가사없이 가락만 빠르게 연주되었다.기달과 옥,길세와 혜가 서로 손들을 잡고 빙글빙글 조명등이 돌고 있는 무대로 나갔다.기달과 길세는 혼자 테이블 소파에 앉아 있는 대명을 향해 무대로 나오라고 손짓을 하

였다.대명은 괜찮다는 뜻으로 손사래를 치고 잔에 남아 있는 맥주를 마저 들이켰다.

아무도 없는

아무도 없는

그 가사 부분의 가락이 애절하게 울려퍼졌다.하지만 무대는 백여명의 청춘남녀들로 가득차 있었다.그들은 한바탕 춤을 추고 나서 아무도 없는 쓸쓸한 아파트나 아무도 없는 텅빈 여관방을 뜨거운 정욕의 공간으로 바꾸어 놓을지도 모른다.

대명은 어릴 적 학교에서 돌아와 아무도 없는 쓸쓸한 집 현관문을 가방 깊숙이 숨겨둔 열쇠를 꺼내어 열고 들어가곤 하였다.부엌 쪽에 형광등 하나가 켜 있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어둠침침한 거실 공간으로 들어설 때의 느낌은 어두운 동굴로

들어서는 기분과 비슷하였다.그 어두운 동굴 구석에 웅크리고 있던 사람이나 동물이 와락 덮칠 것만 같기도 하였다.

아버지는 건축설계사로 어머니는 의상 디자이너로 소위 고급으로 맞벌이를 하는 부모 덕분에 대명은 경제적으로는 어려움을 모르고 자랐으나 혼자 집안에 있는 쓸쓸한 시간들을 많이 가진 편이었다.나중에는 파출부 아주머니가 대명을 맞이해 주

기도 하였지만 혼자 있는 것에 익숙해진 대명에게 파출부의 존재는 오히려 귀찮기만 하였다.대명은 집에 돌아와도 부모가 자기를 맞이해 주지 않는다는 사실이 친구들에게 알려질까 싶어 친구들을 집으로 데리고 오는 것도 꺼렸다.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바쁘고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바빠 어떤 날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아예 밤 12시가 넘어서 들어오기도 하였다.아버지는 자기의 수입만으로도 가정을 넉넉히 꾸려갈 수 있으므로 어머니더러 바깥일을 관두고 집안일만 돌보라고

종종 제의를 하였지만 어머니는 사회적인 활동을 통하여 자기실현을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여겨지는지 아버지의 제의를 들은 체 만 체하였다.

아버지와 어머니와 대명이 함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날은 일요일이 고작이었는데, 일요일도 집사인 아버지와 어머니는 교회 봉사로 바쁘기 일쑤였다.그래서 대명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엿새동안 열심히 일하고 하루는 안식하라고 하신 하느님의

계명을 어기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집안 구석구석에는 여러가지 값비싼 가재도구들과 골동품들이 차츰 늘어나 가득 들어찼지만 대명에게 있어 집은 어디까지나 아무도 없는 쓸쓸한 집일 뿐이었다.

글=조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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