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손 안잡히는 신한국당 - 김영삼 대통령, 동요하는 민주계 무마작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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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신한국당이 사면초가다.내부적으론 들끓고 외견상으론 정처없이 표류하는 양상이다.

박관용(朴寬用)사무총장은 최근 출근해 불쑥 조직국에 들어갔다가 여직원 혼자 나와 있는 사무실에 당의 중요 서류들이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것을 보았다.대외비인 당의 인사자료들,중장기 대선전략등 절대 외부로 유출돼서는 안될 자료들이었다

고 한다.

한 중견당직자는“전쟁터에서 소총도 버리고 철모도 삐딱하고 수통도 안차고 있는게 요즘 우리당의 모습”이라고 말했다.

이회창(李會昌)대표는 취임 한달 기자회견에서“앞으로 당료들과 그룹별로 3~4명씩 만나겠다”고 말했다.그러자 당장“대표가 선거운동을 하겠다는 거냐”는 반발이 터져나왔다.그래서 결국 1급,2급 하는 식으로 급수별 모임을 하는 쪽으로

변경됐다.중앙당만 그런게 아니다.요즘 신한국당 의원들이나 원외 지구당위원장들이 하는 말들을 들으면'어떻게 이 정도까지'하는 느낌이다.

지난 8~9일 진해에서 열린 신한국당 초선의원들의 시월회 모임에서는'분당설'이 나왔다.“이꼴로는 도저히 안되니 당을 새로 만들든가 분당을 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당사자들은“사석에서 가볍게 한 말”이라며 의미를 축소했다.

그러나 李대표가 15일 대전에서 가진 지방당직자들과의 간담회에서도“당명을 바꾸자”는 말이 또 나왔다.“신한국당이란 이름으로는 더이상 못해 먹겠다”는 것이다.이쯤되면 더이상 농담이 아니다.

당내 민주계와 李대표간의 갈등은 일단 잠복했지만 서로 감정은 안좋다.청와대와 민주계의 관계조차 얼마나 나쁜지는 16일 강인섭(姜仁燮)정무수석과 민주계 중진인 신상우.서석재.황명수(黃明秀).김정수의원과의 오찬 내용에서도 잘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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姜수석은 이 자리에서“대통령이 민주계의 동요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음모설을 의식한듯) 전혀 그런 뜻이 없는데 잘못 알려져 안타까워 하고 있다”고 위로했다.

金대통령은 姜수석을 통해 민주계에 대해“동지들을 희생시킬 생각은 전혀 없다”는 뜻을 전달했다는 것.

姜수석은“대통령은 문민정부 창출을 주도한 동지들이 최근 겪고 있는 고통에 공통의 아픔을 느끼고 있으나 청와대가 검찰 수사에 간섭할 수는 없음을 이해해 줬으면 좋겠다”고 언급했다고 한 참석자는 전했다. 〈김종혁.이상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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