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2008년 돌아보는 과학자의 자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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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하지만 그 와중에 소위 전문가인 과학자들의 행동 역시 혼란만 가중시켰던 것 같다. 과학자들의 입장도 다양했다. 그러나 그 어느 입장도 대다수 국민에게 설득력을 가지지 못한 것 같다. 일반인이 기대하는 모습과 달랐다. 흔히 과학자들은 어떤 사태에 대해 객관적인 사실에 근거해 의견을 개진할 것이고, 그렇게 제시된 과학적인 의견은 어느 일방을 변호하는 듯한 편향된 표현이 아닌, 칼로 무를 자르듯 명확한 내용일 것이리라 기대하는 것 같다.

자연과학은 “실험과 관찰을 통해 습득된 자연현상을 설명하는 지식”이기 때문에 한 가지 현상에 하나의 설명만이 존재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자연과학적 지식은 끊임없는 연구를 통해 발견되는 사실에 근거하기 때문에 연구와 분석방법이 발전하면 결과도 계속 변할 수 있다.

따라서 사회적 혼란을 막기 위해 일반 국민에게 책임 있는 이성적이고 과학적인 태도만을 강조하는 것도 결코 바람직한 방법이 아니다. 소비자가 상품을 구입할 때의 판단은 과학적으로 분석이 가능한 사실에 기초하지만, 상당 부분은 심리적이고 감정적인 요인이 역할을 한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밝혀진 사실이다.

우리는 이성으로만 대중의 책임 있는 행동을 유도할 수 없음을 역사적으로 경험했다. 유대인을 학살한 독일인들은 매우 이성적이고 과학적인 민족이었다. “책임 있는 행동은 이성적인 훈련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의 고통과 행복에 공감하는 감정적인 훈련에서 나온다”는 경험주의 철학자 데이비드 흄의 주장을 되새겨 볼 때다. 과학자들은 로봇에는 감정을 넣으려고 노력하면서도 사람들에게 남을 배려하는 감정을 갖도록 가르쳐 주어야 한다는 필요성은 별로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모두가 인정하듯 우리 국민은 매우 감정적이다. 감정은 그것이 긍정적으로 분출될 때에는 국가나 개인에게 큰 힘이 된다. 우리나라 국민은 지난 경제위기 때에도 이러한 긍정적인 감정의 효과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것이 부정적으로 사용되면 그 파괴력은 걷잡을 수 없어진다. 더욱이 그것이 집단화될 때 그 피해는 상상을 초월한다.

요사이 젊은 부모들은 자식들의 응석을 어릴 때부터 모두 받아주고 오로지 학교 공부에만 집중하도록 하여 아이들이 자기감정을 통제하는 방법을 모를 뿐만 아니라 통제하려고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국가가 이공계 기피를 염려하며 과학교육과 과학적 사고만을 강조한다면 감정조절 능력이 결핍되어 툭하면 부화뇌동하는 기계적인 인간을 양산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시대가 학문의 통섭과 기술의 융합을 강조하고 있다. 젊은이들이 다양한 관점과 지식을 소유할 때 국가경쟁력은 높아질 것이고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국민이 될 것이다. 감정의 조절은 교육과 훈련을 통해 이룩되는 것이지 타고나는 것이 아니다. 이제 우리 과학자들은 과학적 사고만을 강조하는 착각에서 벗어나 감성교육의 중요성도 국민들에게 인식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무하 한국식품연구원 원장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