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배지 1년 돈과의 전쟁 - 어느 初選의원 고백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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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한보사건으로 정치자금이 도마에 올랐다.한 야당 초선의원의 고백을 통해 우리 정치의 돈 드는 구조를 짚어본다.이런 구조를 깨뜨리지 않고서는 정치와 기업간 유착 고리는 끊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서 어렵게 한 의원의 육성을 들었다. [편집자]

지금의 정치풍토로는 숨 한번 쉴 때마다 돈이 든다.지난 1년은'돈과의 전쟁'이었다.

위원장이 된 첫날부터 돈 없이는 움직일 수 없었다.첫 지출은 원로당원 30여명에게'신고식'을 할 때.갈비와 냉면 대신 불고기로 때우는 죄로 소주를 40잔이나 마셔야 했다.

선거 때는 학교 후배 30명이 정말 한푼도 안 받고 운동해줘 비용을 많이 덜었다.그래도 밥은 먹여야 할 것 아닌가.쌀을 사다 사무실에서 밥을 해먹였는데 선관위 사람이 이것조차 불법이라고 했다.따귀라도 한대 올려붙이고 싶었지만 악법도 법이므로 지키는 수밖에 없었다.결국 30명×3끼×20일×3천5백원=6백30만원의 추가지출.

당선의 기쁨은 잠시.당선 통지표를 받아 돌아오니 지지자들까지 5백여명이 모여 한잔 했으면 하는 눈치였다.삼겹살 잔치에 2백만원.부녀당원 수고비는 편법인줄 알지만 선거 6개월뒤 주었다.

당선사례 현수막 값까지 5개월간 총2억5천만원이 들었다.법정비용 8천5백만원으로는 턱도 없었다.15평 사무실 임대료만 보증금 6천만원에 월 80만원.막상 국회의원이 됐는데 통장엔 돈 한푼 없었다.급한대로 국회에서 2천만원을 대출받아 불을 껐다.

요즘 월 지출은 1천5백만원이다.지구당 상근요원 4명의 인건비 월 5백만원.대기업 부장 월급도 안되는 걸 4명이 나눠 쓴다.경조사비는 정말 아깝다.30만명 가까운 지역구민이다 보니 하루 부고장이 최하 3~4장은 날아온다.“경조사에

국회의원이 안오면 체면이 안선다”는 사고(思考)만 바꿔줘도 한국 정치는 한층 깨끗해질 것이다.

1만5천원짜리 조화(造花)를 보내고 상황에 따라 부조금을 3만~10만원 정도 낸다.청첩장이 오면 아예 주례를 서주겠다고 먼저 제의한다.

아내에게 주는 생활비가 한달에 3백만원쯤 된다면 호의호식한다고 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대부분의 의원처럼 나의 경우도 아내가 지역구 관리를 상당부분 대행해준다.여기에 2백만원쯤 든다.

예를 들어 각종 단체 대표나 지구당 직능대표들을 집으로 불러 밥 한번 먹이는데 재료비가 10만원은 든다.이런 단체.조직이 1백개가 넘는다.

손님들 입장에서는 1년에 한번 정도“국회의원 집에 가 겨우 삼겹살 먹었다”며 기억도 가물가물하겠지만 아내로서는 한번도 쉬지 않고 1년 내내 1주일에 두세번씩 큰 손님을 치르는 셈이다.아직 대기업으로부터 자금지원 제의를 받은 적은 없다.그러나 지금처럼 돈에 시달리다 보면 탈만 없을 것같으면 큰 돈도 받고 싶다.그러면 서너달은 의정활동에 전념할 수 있지 않을까. 〈정리=김현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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