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선정 스포츠 지도자 파워랭킹 (상) 프로 1위 김경문 감독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4면

국내에서 스포츠 지도자의 리더십이 본격적으로 조명된 것은 2002년 한·일 월드컵 축구대회 부터다. 히딩크 감독이 예상을 깨고 한국을 4강에 끌어 올린 뒤 스포츠에서 지도자의 리더십은 팀 성적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 동안 국내에서 지도자 순위를 매기는 것은 금기였다. 스승의 체면을 존중하는 유교문화의 유산 때문이라고 해석하는 사람이 많다. 중앙일보는 스포츠 지도자간의 경쟁을 통한 경기력 향상을 위해 국내 처음으로 ‘스포츠 지도자 파워랭킹’을 산정했다. 순위는 국내 체육관련 인사 100인의 설문조사를 통해 결정됐다. 그 첫 해인 올해 프로야구 두산의 김경문(50) 감독이 프로 부문 1위를 차지했다. 아마추어 지도자 랭킹은 31일자에 게재한다.

2008년 8월 16일 베이징 올림픽 야구 본선리그 일본전. 2-2로 맞선 9회 초 한국 공격 때 2사 1, 2루에서 김경문 감독은 좌타자 김현수(두산)를 대타로 내세웠다. 상대 투수는 왼손 이와세 히토키. ‘좌투수에게 약한 좌타자를 대타로 내다니…’라는 우려가 감도는 순간 김현수는 깨끗한 결승타를 날렸다. 그리고 9회 말 김 감독은 사흘 전 미국 전에서 부진했던 한기주(KIA)를 다시 마운드에 올렸다. 국내 야구인들은 물론이고 팬들도 의아해했다.

경기 뒤 김 감독은 “김현수는 컨디션이 좋았기 때문에 믿고 내보냈다. 한기주에게는 자신감을 되찾을 기회를 주고 싶었다. 그렇지 않으면 국내 리그에 복귀해서도 힘들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배짱과 뚝심, 믿음과 배려로 요약되는 김 감독의 리더십이 여실히 드러난 장면이었다. 김 감독은 프로 지도자 평가 1위에 올랐다는 소식에 “어떤 상보다 값지고 의미 있다. 과분한 사랑을 나중에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가 팬들에게서 크나큰 사랑을 받은 것은 맞다. 그러나 그 역시 올림픽에서 온 국민에게 전율이 일 정도의 감동과 환희를 선사했다. 당시 9전 전승으로 금메달을 따는 장면은 지금 다시 봐도 똑같은 감동이 밀려온다.

◆두 얼굴의 리더십=김 감독은 매년 시즌이 끝나면 미국에서 공부하는 두 아들(20세·15세)에게 달려간다. 1년 동안 보지 못한 자식들에게는 자상한 아버지다. 하지만 두산 팀에서의 이미지는 ‘엄한 맏형’에 가깝다. 형처럼 세심하게 선수들을 배려하면서도 엄격한 신상필벌로 강한 카리스마를 보여준다. 두산 관계자는 김 감독에 대해 “겉으로는 부드러워 보이지만 속으로는 매서움을 지니고 있다. 선수의 잠재력과 성실성을 날카롭게 판단해 기회를 주므로 선수들이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고 평가했다. 부드러움은 믿음과 배려로 나타나고, 매서움은 배짱과 뚝심으로 표출된다. 두산은 김 감독 부임 후 5년간 네 차례나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두산에서 이종욱·고영민·손시헌·김현수 등 ‘깜짝 스타’들이 잇따라 탄생한 배경에는 김 감독의 배려와 뚝심이 자리 잡고 있다. 8월 베이징 올림픽에서도 김 감독은 강한 믿음과 어떤 위기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두둑한 배짱으로 선수들을 똘똘 뭉치게 했다. 이승엽(요미우리)은 금메달을 따낸 뒤 “아무 말 없이 믿고 맡겨준 감독님께 감사드린다”며 눈물을 흘렸다. 대표팀 주장 진갑용(삼성)은 “좌투수에 좌타자를 대타로 내는 (김 감독의) 배짱에 혀를 내둘렀다”고 말했다.

◆굴곡 많은 잡초 인생=김 감독의 현역 시절은 화려함과는 거리가 있다. 오히려 굴곡이 많았다. 아들만 여덟 명인 집안의 막내로 태어난 김 감독은 사업을 하는 아버지를 따라 어려서부터 전국을 옮겨다녀야 했다. 인천에서 태어났지만 다닌 학교는 전국 방방곡곡에 흩어져 있다. 또 선수생활을 하면서는 부상과 끊임없이 싸워야 했다. 공주고 3학년이던 1977년 김 감독은 포수 수비 도중 타자가 스윙한 배트에 머리를 맞아 닷새간 혼수상태에 빠진 적도 있다.

대학 시절에는 허리를 다쳐 병원에서 “운동을 계속하면 하반신 마비가 될 수도 있다”는 경고를 받기도 했다. 결국 프로에 와서 오른쪽 엉치뼈를 떼내 허리에 붙이는 수술을 해 아직도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그는 노래방에서 윤태규의 최신 트로트곡인 ‘마이 웨이’를 즐겨 부른다. ‘누구나 한 번쯤은 넘어질 수 있어. 이제 와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어’라는 가사처럼 “넘어질 수는 있어도 좌절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야구 인생을 걸어왔다. 그가 스스로를 ‘잡초 인생’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김 감독은 “어려움에 닥치면 사람들은 ‘안 되겠다’는 부류와 ‘해낼 수 있다’는 유형으로 나뉜다. 나는 한 번도 안 된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살아 있는 경험을 통해 터득한 긍정적인 사고가 지도자 생활에서 소중한 자산이 되고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신화섭 기자

[J-HOT]

▶ "일당 8만원 일자리…이왕한거 서둘러라"

▶ 7000억 매출 올린 '햅틱폰' 디자인한 그녀

▶ 헉- 자신을 삼키는 뱀?…이게 가능할까

▶ 北 김정일 수행 첫 등장 김경옥은 누군가 했더니…

▶ "1인당 실질임금 1억 넘는 MBC, 밥 그릇 지키기"

▶ "내 새끼도 저 아이처럼…" 교사들도 탐내는 아이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