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8월 16일 베이징 올림픽 야구 본선리그 일본전. 2-2로 맞선 9회 초 한국 공격 때 2사 1, 2루에서 김경문 감독은 좌타자 김현수(두산)를 대타로 내세웠다. 상대 투수는 왼손 이와세 히토키. ‘좌투수에게 약한 좌타자를 대타로 내다니…’라는 우려가 감도는 순간 김현수는 깨끗한 결승타를 날렸다. 그리고 9회 말 김 감독은 사흘 전 미국 전에서 부진했던 한기주(KIA)를 다시 마운드에 올렸다. 국내 야구인들은 물론이고 팬들도 의아해했다.
경기 뒤 김 감독은 “김현수는 컨디션이 좋았기 때문에 믿고 내보냈다. 한기주에게는 자신감을 되찾을 기회를 주고 싶었다. 그렇지 않으면 국내 리그에 복귀해서도 힘들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배짱과 뚝심, 믿음과 배려로 요약되는 김 감독의 리더십이 여실히 드러난 장면이었다. 김 감독은 프로 지도자 평가 1위에 올랐다는 소식에 “어떤 상보다 값지고 의미 있다. 과분한 사랑을 나중에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가 팬들에게서 크나큰 사랑을 받은 것은 맞다. 그러나 그 역시 올림픽에서 온 국민에게 전율이 일 정도의 감동과 환희를 선사했다. 당시 9전 전승으로 금메달을 따는 장면은 지금 다시 봐도 똑같은 감동이 밀려온다.
두산에서 이종욱·고영민·손시헌·김현수 등 ‘깜짝 스타’들이 잇따라 탄생한 배경에는 김 감독의 배려와 뚝심이 자리 잡고 있다. 8월 베이징 올림픽에서도 김 감독은 강한 믿음과 어떤 위기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두둑한 배짱으로 선수들을 똘똘 뭉치게 했다. 이승엽(요미우리)은 금메달을 따낸 뒤 “아무 말 없이 믿고 맡겨준 감독님께 감사드린다”며 눈물을 흘렸다. 대표팀 주장 진갑용(삼성)은 “좌투수에 좌타자를 대타로 내는 (김 감독의) 배짱에 혀를 내둘렀다”고 말했다.
◆굴곡 많은 잡초 인생=김 감독의 현역 시절은 화려함과는 거리가 있다. 오히려 굴곡이 많았다. 아들만 여덟 명인 집안의 막내로 태어난 김 감독은 사업을 하는 아버지를 따라 어려서부터 전국을 옮겨다녀야 했다. 인천에서 태어났지만 다닌 학교는 전국 방방곡곡에 흩어져 있다. 또 선수생활을 하면서는 부상과 끊임없이 싸워야 했다. 공주고 3학년이던 1977년 김 감독은 포수 수비 도중 타자가 스윙한 배트에 머리를 맞아 닷새간 혼수상태에 빠진 적도 있다.
대학 시절에는 허리를 다쳐 병원에서 “운동을 계속하면 하반신 마비가 될 수도 있다”는 경고를 받기도 했다. 결국 프로에 와서 오른쪽 엉치뼈를 떼내 허리에 붙이는 수술을 해 아직도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그는 노래방에서 윤태규의 최신 트로트곡인 ‘마이 웨이’를 즐겨 부른다. ‘누구나 한 번쯤은 넘어질 수 있어. 이제 와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어’라는 가사처럼 “넘어질 수는 있어도 좌절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야구 인생을 걸어왔다. 그가 스스로를 ‘잡초 인생’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김 감독은 “어려움에 닥치면 사람들은 ‘안 되겠다’는 부류와 ‘해낼 수 있다’는 유형으로 나뉜다. 나는 한 번도 안 된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살아 있는 경험을 통해 터득한 긍정적인 사고가 지도자 생활에서 소중한 자산이 되고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신화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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