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공직부패 막자면 법 강화 필요한가 - 법만으론 해결 안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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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우리 법체계는 공직자의 부정부패 행위를 엄벌에 처해 왔다.예를 들어'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 관한 법률'에 의하면 뇌물의 액수가 5천만원 이상일 경우에 무기징역이나 10년 이상의 중형에 처하도록 되어 있다.1981년에는 공직자윤리법이

만들어져 공직자에게 재산등록.선물신고.퇴직후 취업제한등의 의무를 부과했다.

법을 만들어 처벌을 하고 규제를 하고 해도 공직자 부정부패가 수그러들었다는 징표는 보이지 않았다.오히려 나라 살림 규모가 커질수록 부정부패의 규모도 커지는 역현상을 보였다.법이 너무 느슨하기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했는지 새 법률들이 고안되었다.

작년 정기국회에서 기존의 공직자윤리법을 좀 더 엄격히 만든 개정법률안과 공직자의 윤리와 범죄를 종합적으로 다룬 완전히 새로운 법률인 부패방지법안이 동시에 제출되어 현재 계류중이다.

또한 감사원의 부정방지대책위원회가 중심이 되어 별도의 공직자윤리법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라고 한다.감사원이 계획중인 법안에는 공직자의 관혼상제를 비롯해 경조사 부조금이나 접대등 사교적 행위까지 세세히 규율하는 내용이 들어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이런 강력한 처방들은 일단 시대적 필요성을 인정받고 있다.그러나 우리는 사태의 본질을 좀더 명확히 꿰뚫어 보아야 한다.정교하고 철저하고 강력한 법률만으로 부정부패를 일소할 수 있는가.그동안 역대 정권이 줄곧 서정쇄신을 부르짖

어 왔고 서슬퍼런 사법의 칼날이 춤을 추어왔건만 부정부패는 여전하며 오히려 수법이 교묘해졌다는 평가를 듣는 것은 어찌된 일인가.

공직자를 쥐어짜기만 한다고 해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제대로 대우해 주고 자존심을 살리는 작업을 선행시키지 않는 한 모든 구호는 공염불이 되고 말 것이다.국회에 제출되어 있는 법안들에 따르면 일반인에 비해 공직자에게는 여러 가지 의무를 부과하고 행동제약을 가하고자 한다.반면 그들의 생활을 안정시키고 자부심을 불어넣어 줄만한 조치는 전혀 강구되지 않았다.과연 오늘날 이 땅의 공직자들이 보호.육성의 관점을 떠나서 감시.처벌의 대상만이 될

정도로 일반인에 비해 경제적.사회적 지위에서 우월한 입장에 있는가.

흔히 외국의 공직자가 얼마나 청렴한지 소개하는 글을 접하게 되는데,그때마다 그 외국 공직자가 실제로 어떠한 경제적.사회적 대우를 받고 있는가 하는 점에 대한 소개는 별로 없어서 아쉽기만 하던 터였다.싱가포르 공직자를 청렴한 예로 많이 드는데,그 나라 총리 봉급이 월 6천만원이고 장관은 월 4천8백만원이라는 엄연한 사실만은 짐짓 외면하고들 있다.대만.홍콩의 경우도 과연 어떻게 공직자를 대우함으로써 깨끗한 공직사회의 기풍을 유지할 수 있었는지를 분석해 보고 타

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현재 여기저기서 제시되는 입법의 필요성 자체는 굳이 부인하지 않는다.그러나 공직자의 생활보장책을 전제로 하지 않은 채 강력일변도의 입법만으로 해결하려는 발상은 현실성이 없다고 보아 입법정책적 측면에서 반론을 제기하는 것이다.현대 사회의 복잡다기한 문제점들은 단순히 도덕이나 원칙만으로 해결되기 힘들고 냉정하게 기능적이고 이익교량적인 측면에서 접근하는 것이 현명한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신기남〈국회의원.국민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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