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사법개혁이 '검찰 때리기'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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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대통령 자문기구인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사개추위)가 법정에서 검사의 피고인 신문을 폐지하는 등 급격한 형사재판 개혁 방안을 추진함에 따라 검찰이 반발하고 있다. 사개추위 측은 피고인의 인권과 방어권 보장을 위해 공판중심주의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형사소송법을 개정하자는 것이라고 밝혔다.

사개추위가 마련한 개정 초안에는 검찰 조서의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렇게 될 경우 검사가 피의자를 신문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해진다. 신문조서를 작성해 봐야 법정에서 휴지조각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플리 바기닝(자백감형제)이 없는 상태에서 이를 추진하는 것은 검찰에게 수사에서 손을 떼라는 말과 같다. 피고인을 보호하기 위해 검사의 법정 신문을 없애겠다는 것은 지나친 발상이다. 검사가 범죄 혐의를 추궁하는 것조차 막는다면 범죄 피해자의 인권은 누가 보호해 줄 것인가.

형사재판의 형태가 피고인의 인권을 보호하고 엄격한 증거를 요구하는 쪽으로 바뀌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현실을 무시한 채 급격히 사법체계를 바꾼다면 커다란 혼란을 불러 올 수 있다. 공판중심주의가 도입되면 재판 기간이 길어져 비용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국민 부담이 그만큼 늘어나는 것이다. 검찰의 수사 위축도 경계해야 한다. 범죄인의 인권 보호를 명분으로 수사 기능을 약화시킬 경우 부정부패 척결에 장애 요소가 될 수 있다.

사법체계나 재판제도의 변화는 충분한 시간을 갖고 검토해야 할 사안이다. 그런데도 사개추위는 불과 1주일 만에 초안을 마련했다는 보도다. 더구나 이번 초안은 "검찰이 갖고 있는 제도 이상의 권력을 내놓아야 한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 직후에 나왔다. 그래서 정치적 배경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사법개혁의 목표는 인권을 보호하고 국민에게 양질의 사법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특정 기관의 힘을 빼기 위한 것이라면 개혁의 이름을 빈 '손보기'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