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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브이세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0면

“대통령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

“나도 그게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어.교장이라는 뜻인지? 그리고 대통령 물러가라고 데모하듯이 외치는 거야.”

“그래서 아까 밑에서 좀 시끄러웠구나.난 도철이 네가 옥정을 건드리는 줄 알았지.”

“내가 용태 너 같은 줄 알아? 건드리려고 그래도 악취가 나서 못하겠더라.내 생각인데 말이야,옥정이 자기 아버지가 어떻게 죽었는지 기억도 못하니,지하방에 가두어놓지 말고 그냥 내보내버리자 이거야.”

“그게 정말이라면 옥정을 처치해야 한다는 내 주장을 철회할 수도 있지.옥정이 제정신이었다면 벌써 내 손에 어떻게 되었을거야.그러고 보니 미치는 것도 사는 길이네.”

용태가 두 손을 모아 손가락들끼리 깍지를 끼고는 우두둑,소리를 내었다.

“성경에 보면 말이야,다윗 왕도 적군에 쫓겨 죽게 되었을 때 일부러 침을 질질 흘리고 땅바닥을 벌벌 기어다니며 미친 척해서 살아난 경우도 있지.옥정은 미친 척하는 것은 아니지만 결국 미친 것이 사는 길이 되었네.”

대명이 세례도 받고 교회 생활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성경에 대한 지식은 꽤 있는 편이었다.

“기달이 돌아오면 옥정을 내보내는 방향으로 우리가 의견을 모아보자.자기 집을 찾아가긴 하겠지.”

“근데 자기 집을 찾아가면 식구들이 그 동안 어디 있었느냐,아버지가 널 찾으러 갔다가 돌아오지 않는데 아버지는 보지 못했느냐 하고 꼬치꼬치 캐물을 거란 말이야.아버지가 우리 손에 죽었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옥정이 자기가

어디에 있었다는 것은 기억하고 식구들을 데리고 여기 비트를 찾아올 수도 있다 이거야.그러면 그 식구들은 자연히 우리를 의심하게 될 거고.그러니 옥정을 내보내더라도 다시는 여기를 찾아올 수 없도록 해야 한단 말이야.”

용태가 묘책을 짜내려고 그러는지 두 팔로 머리를 싸안았다.

“여기를 찾아올 수 없도록 하려면 결국 여기 비트 장소에 대해서도 기억에 혼란을 일으켜야 한다 이거지?”

“바로 그거야.”

“이러면 어떨까? 옥정을 이 동네에서 멀리 데리고 가서 버리고 오는 거야.청량리 역 같은 데 그대로 세워두고 오면 그 근처를 배회하게 될 거고,경찰차가 행려자로 여겨 시립병원 같은 데 수용을 할 거란 말이야.신원을 파악할 만한 증명서가 없으면 경찰이 옥정을 식구들에게 인계하는 데 꽤 시일이 걸릴 거란 말이야.그러면 공간과 시간에 혼돈이 일어나 옥정이 여기 비트에 대해 식구들에게 말하지도 않을 뿐더러 찾아오지도 않을 거란 말이야.아니 찾아올 수가 없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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