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만, 아프리카의 희망을 포착하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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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호 11면

김중만과 아프리카의 인연은 깊다. 이제 김중만과 아프리카는 둘이 아니라 하나다. 50대의 나이에 레게 헤어를 하고 있는 것도, ‘동물왕국’이라는 사진전에 사자 가족을 담기 위해 7m까지 근접 촬영을 시도하는 위험천만한 모험을 감행한 것도, 에이즈에 걸린 아이를 찍으며 난생처음 카메라 앞에서 울음보를 터트린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아프리카는 그의 아버지이자 외과의사였던 김정 박사가 28년간 의료봉사를 하다 생을 마친 곳, ‘아버지의 역사’가 숨쉬는 땅이다.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외과의사였지만 그의 아버지가 아프리카에서 새로이 쓴 이명(異名)은 ‘한국의 슈바이처’. 위암으로 투병하던 아버지의 병 수발을 들고 임종을 지켜본 김중만에게 아버지가 남긴 유산은 단돈 2000달러였다. 그리고 남겨진 절박한 유언. “아프리카를 위해 무엇인가를 해라.”

김중만은 최근 아프리카에 축구 골대를 세우기 위해 아버지의 유골이 묻힌 보츠와나에 다녀왔다. 50여 일의 체류기간 동안 체중이 10㎏이나 빠진 그는 아버지 이야기를 꺼내면서 여러 번 눈자위가 벌겋게 물들었다. “‘아버지 외로우시죠?’ 왜 그 한마디를 평생 건네지 못했을까 절절하게 후회가 되더군요.” 아버지가 살던 집과 무덤을 오가면서 그가 목격한 것은 의롭게 살다 간 어느 외과의사의 위엄이 아니라 절대고독에 내던져진 한 남자였다. 아버지라는 존재 자체가 그에게 위대한 유산이라면, 이제는 그가 위대한 유산을 완성하고 있는 듯하다. 지키지 않으면 공기처럼 흩어졌을 유언이 누구도 베낄 수 없는 ‘유전’으로 고스란히 이어지는 것을 보면.

“에이즈에 걸린 네 살짜리 티파니를 찍으면서 사진가로서는 난생처음 울었지요. 그때 명백히 환기된 사실이 하나 있어요. 다시는 아프리카 아이들의 아픔을 앵글에 담지 않겠다는 것이지요.” 윤리적 딜레마에 빠진 김중만은 그때 뼈아픈 다짐을 했다. 아프리카의 참상을 고해성사하는 대신 아프리카의 희망을 보여 주겠다고 말이다. 그 생각이 구체적으로 옮겨진 것이 김중만의 ‘골포스트 희망기행’이다.

‘골포스트 희망기행’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시작해 아프리카의 원시 부족 마을 곳곳을 찾아가 축구 골대를 세워주는 프로젝트다. 김중만의 이런 생각에 깊은 공감을 표한 아디다스 코리아가 프로젝트에 동참하기로 했고, 고려대 의대팀도 합류해 아이들을 진료했다.

아프리카 골포스트 희망기행 프로젝트 참여 문의02-790-5436, www.plankorea.or.kr

새로운 문명에 대한 부적응으로 고통받는 아프리카 아이들에게 축구 골대는 그 자체로 생의 목적이다. 축구 골대를 향해 돌격하고, 뛰고, 공을 차는 사이 마을은 전에 없는 희망의 온기로 가득 차게 됐다고 한다.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월드컵이 개최되는 그날까지 ‘골포스트 희망기행’은 아프리카 원시 마을 곳곳으로 뻗어 나갈 예정이다.

“아프리카는 현존하는 인류의 아픔이자 상처죠. 그리고 이것을 방관하는 우리의 양심의 거울이기도 합니다.” 갑자기 상기되는 표정, 그리고 흥분한 듯 점점 커지는 목소리. 그는 이내 반문하듯 하나씩 되짚는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모르고 있어요. 그게 너무나 화가 납니다. 이제는 저마다 양심의 거울을 가지고 시인했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그들을 모른 체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2000년 이상 유린당한 아프리카의 아픔은 그것이 아이들의 것이었을 때 더 오롯이 드러난다. 기아로 척추가 굽어진 아이, 태어나자마자 에이즈에 감염된 아이들, 강요된 문명으로 알코올 중독과 마약에 빠진 부시맨들. 그나마 이들에게 긍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문명의 이기가 있다면 그것은 축구다.

“어린 시절 아프리카에 살 때는 사실 아프리카를 좋아하지 않았어요. 오지 같은 허허벌판에서 어떤 즐거움을 찾을 수 있었겠어요? 그런데 이 황폐한 곳에 축구 골대를 만들어주니까 마을 전체가 밝아지더군요. 축구공 하나 차는 것으로 행복해질 수 있는 곳, 그곳이 바로 아프리카입니다.”

어느 사회학자는 신자유주의에 따른 극심한 불평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이타적 유전자’만이 희망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를테면 김정 박사 같은 이타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이 시대의 마지막 희망이라는 것이다. “한국 사람에게는 베풀고 싶어하는 유전자가 그 어떤 민족보다 많다고 생각해요. 이제는 우리가 나설 때입니다. 단돈 1만원으로 한 아이의 인생을 구제할 수도 있습니다.”

아프리카에 축구 골대를 세우기 위해 목수가 된 양 나무를 자르고 페인트칠을 하면서도 그는 세간의 시선에 손사래를 친다. “나는 그저 욕심 많은 사진가일 뿐이에요. 브라질의 어떤 사진가의 작품을 보면서 질투심에 ‘죽이고 싶다’는 세속적 열정에 몸살을 앓는 걸요.”

인터뷰가 끝나려는 순간 그는 세간의 시선에 대해 한 번 더 결벽증을 보였다. 숙명처럼 이어져 온 아프리카와의 인연, 그리고 그 땅에 한발 더 가까운 애정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자신의 행보가 어떻게 수식될지 부담스럽다는 거다. 그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알기 때문에 인터뷰 기사의 마지막을 어떻게 정리할지 고민됐고 결국 이렇게 쓰기로 했다. 김중만이 새롭게 쓰고 있는 이름은 ‘아프리카의 희망을 찍는 사진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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