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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세계 경제, 어디로 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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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앞으로 세계 경제는 어떻게 될까. 최악의 상황은 지나간 것인가, 아니면 닥쳐올 것인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선 불황의 악순환과 금융 환경의 악화가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미국이 수십 년 만에 최악의 경기후퇴를 겪게 될 것은 분명하다. 최소 2년간 깊고도 긴 경기의 수축 국면이 지속될 것이다. 세계 경제도 침체를 보일 것이다. 유로화 사용국들(유로존)과 영국·캐나다·일본을 비롯한 선진국도 경기후퇴를 피해갈 수 없을 것이다. 무역·금융·통화가 연계된 실질적 금융 충격으로 신흥경제권 경제는 경착륙할 위험도 있다.

올해 초 선진국권이 불황에 빠지면서 70년대식 스태그플레이션(저성장 고물가) 공포가 엄습했었다. 그러나 총수요가 총공급을 따라가지 못하는 데 따른 제조업 부문의 가격 결정력 약화로 인플레이션 압력은 둔화됐다. 급등하는 실업률도 임금인상 억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런 요인들이 원자재 가격의 급격한 하락과 맞물리면서 스태그플레이션이 아니라 디플레이션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디플레가 위험한 것은 유동성 함정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명목 정책금리를 제로금리 아래로 낮출 수 없는 상황에서 통화정책은 효과를 발휘할 수 없다. 가격이 하락하는 것은 자본의 실질비용이 늘어나고, 명목부채의 실질가치가 올라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소비와 투자의 하락으로 이어져 소득과 고용이 줄어들고, 이는 다시 수요 감소와 가격 하락을 부채질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게 된다.

전통적 통화정책의 효용성이 떨어지게 되면 기존의 통념을 깬 과격한 통화정책들이 등장할 것이다. 투자자나 금융기관, 채무자들을 정부가 긴급 구제하는 정책과 은행의 신용경색을 완화하기 위한 대규모 유동성 공급, 그리고 장기국채 이자율을 떨어뜨리거나 국고채와 회사채 간 금리 차를 줄이는 것과 같은 조치 말이다.

현재의 글로벌 금융위기는 미국 주택시장의 거품이 터지면서 촉발됐다. 그러나 그것 때문만은 아니다. 주택과 상업담보대출(모기지)에서 신용카드, 자동차 할부금융, 학자금 대출까지 거의 모든 부문에서 신용과잉이 발생했다. 이런 부채들을 파생금융상품으로 전환시킨 자산유동화 상품들도 도를 넘었다.

그뿐만 아니라 지방정부의 대출, 차입 매수에 대한 무차별적 자금 지원, 부도가 나면 막대한 손실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회사채, 위험도가 높은 데도 규제의 사각지대에 방치됐던 신용부도스와프(CDS) 등에서도 신용과잉 문제가 발생했다.

미국만의 문제도 아니었다. 다른 나라에서도 잠재 위험 요소를 감안하지 않은 과도한 대출로 주택 버블이 커졌다. 원자재 버블에다 사모펀드와 헤지펀드 거품도 있었다. 우리는 고수익·고위험형 채권을 사고팔면서 유동성 거품을 일으키는 비은행 금융기관들의 복합체인 이른바 ‘그림자 금융 시스템’의 몰락을 눈앞에서 보고 있는 것이다.

전체 손실 규모가 2조 달러에 달하는 사상 최대의 자산 및 신용 거품 붕괴 사태가 진행 중이다. 정부가 신속히 자본을 투입해 부분 국유화를 하지 않으면 금융기관들의 손실은 천문학적으로 불어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은행들이 대출 중단과 여신 회수 압력에 몰리면서 신용경색은 더욱 심해질 것이다.

주가 및 다른 위험자산 가격은 지난해 말을 고점으로 급격히 하락했다. 하지만 여전히 급락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일각에선 위험 자산의 가격이 떨어질 만큼 떨어져 이미 바닥에 근접했으며 앞으로 빠르게 회복될 일만 남았다고 전망하고 있다.

최악의 상황이 여전히 우리 앞에 놓여 있다. 경기후퇴가 완만하고 단기에 그칠 것이라는 일부 시장분석가의 전망과 달리 향후 수개월 동안 예상보다 훨씬 나쁜 거시경제 지표와 기업들의 실적보고서가 잇따라 발표되면서 위험자산 가격의 하향 평가 압력이 가중될 것이다.

자국 금융업계를 지원키로 한 G7(주요 7개국)과 선진국들의 조치로 전 세계 금융시스템의 붕괴 위험은 줄어들고 있지만 취약성이 해소된 것은 아니다. 돈을 빌려 투자한 헤지펀드 등이 유동성 부족에 직면, 보유자산 매각에 나서면서 가격은 더 떨어지고 지급불능으로 파산하는 또 다른 금융기관이 속출하는 사태가 올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신용경색이 더욱 심화되고 신용축소가 계속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2009년은 글로벌 경기후퇴와 신용 위기, 손실 누적과 연쇄 도산이 잇따르는 고통스러운 한 해가 될 것이다. 선진국과 신흥경제국의 공격적이고 조화로운 정책 협조만이 2010년 글로벌 경제의 회복을 담보할 수 있을 것이다.

◆누리엘 루비니(48)는 현재 IMF 자문역을 맡고 있다. 미국 하버드대 경제학 박사로 예일대를 거쳐 뉴욕대 스턴 비즈니스 스쿨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이번 금융위기를 정확히 예측한 것으로 유명하다.

누리엘 루비니 미국 뉴욕대 경제학 교수
정리=정용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