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산하기관·공기업 90곳 이공계 채용 비율 매년 확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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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력.조폐공사 등 정부 산하기관 및 공기업 90곳에선 앞으로 5년간 이공계 출신의 신규 채용 인력을 일정 비율씩 늘려나가게 된다. 정부는 28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오명 부총리 겸 과학기술부 장관 주재로 과학기술 관계장관회의를 열어 이 같은 내용의 '이공계 채용 목표제'를 의결, 다음달 시행키로 했다. 이는 지난해 과기부 연두 업무보고 때 처음 논의됐던 것으로 이번 회의 때 적용 기관 등이 최종 결정됐다.

이들 기관은 최근 3년간 뽑은 신규 인력 가운데 이공계 출신의 비율을 기준으로 이보다 5%씩 많은 수를 매년 추가 채용케 된다. 예를 들어 지난 3년 동안 신규 채용 인원 중 이공계 비율이 40%였던 기관은 ▶2005년 42%▶2006년 44.1%▶2007년 46.3%▶2008년 48.6%▶2009년 51%까지 늘려 이공계 인력을 뽑게 된다.

정부는 앞으로 5년간 이들 90개 기관에 채용될 이공계 인력 2만7603명 가운데 이 제도로 인한 증가분은 1498명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현재 55.1%인 이들 기관의 이공계 신규 채용 평균 비율은 5년 후 60.3%로 높아지게 된다. 과기부 관계자는 "일단 5년간 운영한 뒤 그 성과에 따라 추가 실시 여부를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제도를 적용할 기관은 정규 직원 300명 이상의 경영혁신 대상 공기업과 정부 산하기관 가운데서 선정했다. 예금보호공사.한국산업은행.한국과학기술원(KAIST).원자력연구소.수출보험공사.국민연금관리공단.근로복지공단.국립공원관리공단.도로공사.주택공사.중소기업진흥공단.금융감독원.한국방송공사.특허정보원 등 총 90개다. 법조나 의료 관련 업종은 제외됐다. 정부는 채용 결과를 경영 실적 평가에 반영하고, 이를 잘 지킨 기관에는 가산점 등의 인센티브를 줄 방침이다.

김필규 기자<phil9@joongang.co.kr>

[뉴스분석] 인문·사회 계열 역차별 논란 일 듯…기관 특수성 무시한 일괄 규제도 문제

정부가 이공계 채용목표제를 도입키로 한 것은 이공계 기피 현상을 완화해 우수한 과학기술 인력을 많이 키우자는 취지다.

과학고 졸업생들의 이공계 진학률은 2001년 82.6%에서 2003년 72.8%로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우수한 학생들이 이공계에 가지 않으려는 것은 이공계쪽의 취업 여건이 나쁘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의 지난해 자료에 따르면 공학.이공 계열 전공자의 실업률은 각각 9.8%, 8.2%로 전체 평균(6.8%)을 웃돌고 있다.

그러나 이공계 채용목표제가 특정 집단의 고용 차별을 시정하기 위한 조치의 하나로 도입되는 게 적절한지는 논란이 될 전망이다. 과연 '이공계 출신'이 여성이나 장애인처럼 사회적 약자에 해당하느냐는 것이다. LG경제연구원 신민영 연구위원은 "요즘에는 이공계보다 인문.사회계열 출신이 약자가 아니냐"고 반문했다. 매년 5%가량 이공계 채용을 늘리는 일괄 규제도 문제다. 개별 기관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재정경제부 산하기관 한 곳의 인사담당자는 "기업 특성에 따라 장애인.국가유공자 등을 의무채용하기가 쉬운 곳도 있지만 힘든 곳도 있다"며 "자꾸 새로운 규제가 생기게 되면 조직에서 진짜 필요한 인재를 뽑지 못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물론 정부도 역차별 문제나 위헌 논란 등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점진적.한시적으로 채용 목표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손쉬운 규제를 도입하는 것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사회적인 유인 체계를 제대로 고치는 게 정공법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공계 출신이 고시 합격자나 의사.한의사보다 불리하지 않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서경호 기자<praxi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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