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이래서야>1. 온국민 사회저질화에 맞설 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7면

이 사회가 천격(賤格)임을 드러내는 사건들이 연발하고 있다.‘정신’을 잃은 물질과 권력이 난무해 심리적 공황상태까지 야기하고 있다.모두들 되뇐다.“정상(正常)이 아니다”고.더욱이 이 사회에 건강한 정신과 삶의 자양분을 공급해야 할 문화계까지도 깊은 병을 앓고 있는데 대해 우려와 자괴(自愧)가 흐르고 있다.여기 문화계 ‘명의(名醫)’들을 긴급 초청,병인(病因)을 진단하고 처방전도 알아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편집자]

지난 한 세대 우리 사회를 이끌어온 것은 성장의 신화였다.경제성장을 통한 근대화와 성공적 운영이 소망스런 사회발전에 이른다는 논리는 사회적 정력의 동원과 투자의 뼈대를 이루고 있었다.

물론 성장의 신화만이 떨친 것은 아니다.혁명의 신화도 젊은 세대 사이에서 크게 일어났다.제국주의와 종속이라는 핵심 개념을 통해 현실을 진단하고 인간해방을 희구하는 혁명의 신화는 80년대 들어 성장의 신화와 살벌한 대립을 보이게 된다.그러나 동구권 몰락 이후의 역사진행은 혁명 신화가 내재적 붕괴를 맞은 것으로 보인다.

성장신화에 이끌린 산업화는 일단 대단한 성과를 올렸다.많은 대가를 치렀으나 ‘문명의 기록치고 야만의 기록 아닌 것이 없다’는 말을 감안할 때 성장을 과소평가할 수는 없다. 문제는 1차적 성공후의 뒷얘기다.너무 일찍 샴페인을 터뜨렸건 어쨌건 우리는 난국에 처해있다.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산업화의 성공적인 달성과 함께 이루어진 사회문화적 부대(附帶)상황의 양상은 우리로 하여금 곤혹감을 자아내게 한다.

성장의 1차적 성취는 우리를 이른바 정보화사회 혹은 소비화사회의 한복판에 세워놓았다.그러나 우리가 실제로 체감하는 것은 저질화 사회 속에 서있다는 것이다.작금 사회를 소란스럽게 하고 있는 추문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우리는 사회의 저질화를 실감한다.어제 오늘의 것이 아닌 대규모 부패현상에 더해 사회를 움직이고 있는 기운 센 사람들이 도무지 첩보영화속의 비밀요원같은 작태를 보여주고 있으니 말이다.

사람 사는 세상에 악덕이 없을 수는 없다.문제는 정도·규모와 범위다.옛날이라고 엿듣기나 고자질같은 전통적 부도덕행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그러나 비록 위선적으로라도 그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것과 그것을 당연시하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도청·공갈·매수·폭로가 일상화된 느낌이다.파시즘이나 나치즘의 끔찍함은 인본주의 가치의 정면부정을 정치논리로 표방했다는 점에 있다.브레이크 장치없는 야만주의에의 폭주가 그 논리적 귀결이었다.

사회와 문화는 사실상 동의어며 서로 얽혀 있다.문화는 사회를 반영하면서 동시에 사회를 형성한다.시장지향성의 비속한 저질문화를 저질사회의 반영이라고 보는 것으로만 끝내서는 안된다.우리는 문화의 인간 형성력이나 심리적 정화능력에서 저질화사회 극복의 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

‘탈신비화’라는 이름으로 포장돼 있는 모든 선동가적이고 기성문화를 뒤집는 문화도 사회비속화·저질화에 기여한다.세련된 민족어에 역행하는 광고문구 같은 시로부터 개그화해가는 유사비평에 이르기까지,또 대중문화 스타에게 할애하는 가십에서 허황된 허구소설에 내주는 지면에 이르기까지 저질화와 피상화 추세는 도저(到底)하고 몰염치하다.

성장의 후일담이 상업주의의 사회 제패로 귀결된다면 무엇을 위한 성장인가 하고 묻지 않을 수 없다.‘이렇게 합시다’라고 권하는 전도사 같은 열의로 해결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국민 각자가 자기 자리에서 사회저질화 추세에 저항해야 할 것이다.이때 가장 먼저 요청되는 것이 대학·매스컴과 지도층의 자기반성임은 말할 것도 없다.

<유종호 문학평론가·연세대 석좌교수>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