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농구>강동희 농구 11년만에 최고 - 프로 원년 정규리그 MVP 영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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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최고'가 되기까지 11년이 필요했다.

너무나도 오랜 인고와 기다림의 시간을 헤쳐왔기에 프로농구 원년 최우수선수 타이틀을 거머쥔 지금,강동희(31.기아.사진)에게 새삼스런 감격은 없다.

강동희의 MVP 등극은 그가 한번도 넘어본적이 없고 은퇴하기 전까지 절대로 넘을 수 없을 것처럼 느꼈던 거대한 벽,중앙대.기아 1년선배인'허재'를 마침내 넘어섰다는 것을 뜻한다.

강동희와 허재 사이에는 뜨거운 우애와 라이벌의식이 공존한다.사나이로서 의기투합하는 두 스타지만 선수로서도 포지션과 플레이스타일의 유사성,높은 지명도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강동희는“의리 때문에 기아에 왔으며 허재형과 뛰고 싶어 왔다”고 말할 정도로 허재에 대해 각별한 감정을 지니고 있다.지금은 사라지고 없지만“선배들이 모여있는 기아에서'파워'를 보여줘야 한다”는 의식이 강동희가 졸업할 당시 중앙대

선수들 사이에 일종의 유행처럼 번졌다.

그러나 흐르는 세월은'의리'도 낡게 했다.농구 천재로 자타가 인정하는 허재도 더이상 강의 우상은 아니다.

적자생존의 프로농구는 강에게 처음으로'강동희농구'를 생각하게 했다.그동안 강은 언제나'허재를 위한 농구'를 해왔고 또 요구받아왔다.

개인이 우선인 프로농구는 강동희에게 시련의 장이자'허재를 이용한 농구=허재를 돋보이게 하기 위한 농구'에서 벗어나게 한'해방구'가 됐다.기아는 허재를'포기'하면서까지 강동희-용병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파이프라인을 열었다.용병을 꺾고

승리를 부르는 강동희에 대한 코칭스태프의 신임이 그만큼 절대적이었던 것.

강동희가 프로에서 진가를 발휘하게 된데는 기량 외에 후덕한 인품과 성실성이 크게 작용했다.

용병의 마음을 열고 그들로 하여금 자신의 손짓 한번에 기계처럼 움직이게 한 것은 기아의 벤치도,허재도 아닌 강동희였다.

클리프 리드도,로버트 윌커슨도 강동희의 말이라면 철석같이 믿고 따른다.

기술적으로도 강은 용병들이 설쳐야 빛을 볼 수 있는 스타일이다.두터운 가슴에서 터져나오는 강력한 힘과 긴 팔을 이용한 낮고 빠른 드리블은 한국가드가 상대하기 어려운 용병과의 대결에서 대등한 싸움을 가능하게 했다.

그의 성실성은 동료들로 하여금 군말없이 그를 따르게 만들었다.

아이로니컬하게도 프로농구가 아니었다면,그리고 올해 출범하지 않았다면 강동희가 최고수의자리에 오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한국농구가 진지하게 프로농구를 검토하던 89~90년 무렵,슈퍼스타 이충희(현대).김현준(삼성).허재가 한 코트에서 자웅을 겨루던때 프로가 출범했다면 허재와 동시대를 달려야 하는 강동희에게 영영 기회가 오지 않았을지 모른다.

이런 점에서 강동희는 철저한 프로선수일 수밖에 없다.앞으로 5년은 문제없다고 장담하는 강동희의 가슴 저편에는 어렵게 오른 최고의 자리를 절대로 쉽게 내놓지 않겠다는 다짐이 새겨져 있을 것이다.

<허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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