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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 사이 갈등만 부추기고… 고양 경전철 사실상 백지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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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찬반 논란을 빚던 경기도 고양시 일산신도시의 경전철(모노레일) 사업계획이 사실상 백지화됐다. 강현석 고양시장은 23일 “경전철 사업으로 뜻하지 않게 오해와 불신이 초래된 측면이 있다”며 “여러 가지 여건상 경전철 사업을 전면 재검토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시는 재검토의 가장 큰 이유로 재원 조달의 어려움을 들었다. 총 사업비 5115억원 가운데 도비 지원 불투명 등으로 시의 부담이 2011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는 것이다. 여기에 수요 예측이 부풀려져 경제성 분석이 의문시된다는 설명이다.

육동근 고양시 교통계획담당은 “명품 도시 개발 등 최근 환경변화를 충실히 반영해 다시 추진하겠다는 것으로 사업이 늦어지는 것뿐이지 사업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나 2010년 5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주민이 반대하는 경전철 사업을 다시 추진하기는 힘들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시작부터 논란=고양 경전철은 2003년 9월 일산신도시 순환철도망 구축 차원에서 추진되기 시작했다. 시는 2006년 4월 한국교통연구원에 경전철 기본계획 용역을 의뢰했다. 용역 결과에 따라 지난 7월 시는 5115억원을 들여 대화∼식사 지구 11.9㎞ 구간에 1단계 사업을 마친 뒤, 대화∼중산 지구 5.2㎞(2단계), 중산∼식사 지구 4㎞(3단계) 등 연차적으로 순환 노선을 구축한다는 계획을 마련했다.

그러나 곧바로 일산 및 주변 시가지 주민 사이에 격렬한 찬반 대립이 벌어졌다. 7월 21일 계획됐던 주민공청회는 찬반 주민들의 시위와 대치로 무산됐다. 계획 노선이 지나가는 일산 호수공원 주변 40개 아파트단지 2만여 가구 주민은 대책위원회를 구성해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환경훼손과 소음, 조망권 침해, 도심 미관 저해 등을 반대 이유로 들었다. 그러나 식사·풍동·대화 지구와 덕이·탄현·중산 지구 같은 일산신도시 주변 지역 주민들은 원활한 교통대책을 위해 경전철이 꼭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여 왔다. 이런 와중에 노선 선정과 관련한 특혜 의혹까지 불거졌지만 시는 사업 강행 의지를 밝혀 왔다.

◆불씨는 계속=고양시가 경전철 사업추진에 들인 예산은 총 4억5000만원. 용역비용 4억3000만원과 홍보비용으로 2000만원이 쓰였다. 주민들은 경전철 사업이 주민 간 갈등만 야기하고 행정력과 예산만 낭비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고양시는 “계획을 철회한 것이 아니라 유보한 상태여서 예산 낭비는 아니다”는 입장이다.

이홍우(51) 경전철 반대 주민대책위 집행위원장은 “시는 ‘재검토’라는 모호한 표현을 쓰지 말고 당장 전면 철회한다는 입장을 명확히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경전철 건설을 찬성해 왔던 ‘경전철 조기 착공을 위한 고양시민협의회’의 서종남(49) 홍보팀장은 “시가 타당성을 인정해 추진하던 사업을 반대 여론에 떠밀려 재검토하겠다는 조치는 납득할 수 없다”며 “계속해서 경전철 추진 운동을 펼치겠다”고 말했다.

채수천(65) 고양시아파트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은 “주민 간 갈등의 골이 깊어져 가는 상태에서 무리하게 사업을 밀어붙이는 것은 지역공동체를 붕괴시킬 수 있다”며 “시기를 늦추더라도 주민 의견을 체계적으로 수렴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익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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