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세기를찾아서>10. 인도 캘커타에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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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나는 캘커타공항에서 시간을 맞추는 일에서부터 인도를 시작했습니다.

시계바늘을 돌려 시차(時差)를 조정하면서 문득 평소에 천동설(天動說)로 생활한다고 하던 당신의 말이 생각났습니다.4시간이 채 못되는 시차지만 이 시차는 지구는 역시 돌고 있다는 지동설(地動說)을 깨우쳐줍니다.그러나 생각해보면 이 시차와 지동설은 여행객에 지나지 않는 나의 과학일 뿐이며 이곳에서 낮과 밤을 보내고 맞는 인도의 삶에는 역시 천동설이 과학임에 틀림없습니다.내가 인도땅에 발을 디디며 가장 먼저 느끼게 되는 것이 바로 이 ‘생각의 시차’입니다.

인도의 새벽 하늘은 까마귀들이 열어줍니다.우리나라의 까마귀보다 몸집도 작고 색깔도 잿빛이지만 가장 큰 차이는 인도에서는 까마귀가 길조(吉鳥)라는 사실입니다.까마귀에 대한 생각부터 바꾸어야 합니다.까마귀가 열어놓은 하늘 아래로 캘커타의 공간이 드러납니다.오래된 자동차가 달리고 역시 오래된 전차가 달리고 인력거가 달립니다.일찍이 작은 어촌이던 이곳에 대영제국의 동인도회사가 들어서면서 건설된 도시가 캘커타입니다.

빅토리아여왕의 기념관이 지금도 흰 대리석 살결로 아름답게 서 있는가 하면 시민공원의 중앙에는 영국의 인도지배 거점이었던 윌리엄요새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세계경영의 기지였던 이곳 캘커타에는 그 시절의 번영을 증거하는 빅토리아풍의 건물들을 곳곳에서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영국이 돌아가고 난 뒤에 남아있는 캘커타의 모습은 낡은 건물들이 만들어내는 거대한 잿빛 공간입니다.그리고 그 잿빛 공간을 가득히 메우고 있는 사람들의 남루한 모습입니다.나는 이 잿빛 도시에서 엉뚱하게도 일본인의 망언을 떠올리고 있었습니다.일본의 조선 지배가 조선의 근대화를 가져다주었다는 그들의 망언이 글자 그대로 망언(妄言)임을 눈앞에 보여주는듯 했습니다.

영국과 영국의 자본이 떠나버리고 난 뒤 배후지(背後地)마저 사라져버린 식민도시의 운명을 짐작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식민모국의 도시보다 더 급속하고 참혹하게 쇠락해가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짐작됩니다.그러나 그것의 가장 참담한 모습은 도로나 건물이 아니라 잿빛 공간에 남겨진 사람들이었습니다.도로변에서 잠자고 있는 사람들 중에는 방글라데시 난민들이 대부분이라고 하지만 이 이질적인 도시공간은 그 속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잉여인간(剩餘人間)으로 만들고 있습니다.일자리가 있거나 없거나에 관계없이 뿌리뽑힌 삶의 모습이었습니다.

인도의 농촌에서 만난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그들보다 못한 옷을 걸치고 있었지만 그들의 남루함에다 초점을 맞추는 장치는 어디에도 없었습니다.다른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잘못된 것은 가난과 남루함에 대한 나의 의식인지도 모릅니다.백색(白色)과 패션에 길들여진 나의 시각이 잘못된 것인지도 모릅니다.사상과 예술의 도시 캘커타는 인도의 얼굴이라고 하지만 나는 인도의 정직한 얼굴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캘커타에는 노벨 평화상을 받은 테레사 수녀가 있습니다.‘사랑의 선교회’가 있고 ‘죽음을 기다리는 집’이 있습니다.늦은 밤인데도 환히 불 밝힌 기도실에서는 사랑의 기도를 올리고 있었습니다.그러나 그 바깥에는 사랑의 손길이 채 미치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놀라운 것은 그처럼 힘겨운 하루하루를 이어가면서도 결코 죽음을 기다리는 법이 없다는 사실입니다.죽음을 대단치 않은 것으로 여기며 오히려 삶의 일부로 깊숙이 안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사랑과 자선과 선교의 대상으로 전락되는 법없이 마치 인도땅에 뿌리내린 한그루의 나무처럼 살아가고 있습니다.영국이 만들어낸 도시공간이 인도의 공간이 아니듯이 자선과 선교는 ‘인도의 방법’이 아니라는 생각을 금할 수 없습니다.

나는 인도의 시성(詩聖) 타고르를 찾아갔습니다.라빈드라 바라티예술대가 돼 있는 그의 생가에는 학생들이 교정의 여기저기에 둘러앉아 한담을 나누고 있었습니다.암울한 식민지의 조선청년들에게 일찍이 아시아의 등불이었던 코리아를 상기시켜주고 지성의 맑은 물줄기가 메마른 벌판에서 길 잃지 말기를 당부하던 그의 시구는 이제 바라티대의 학생들과 함께 나누어야 할 노래인지도 모릅니다.

나는 후글리강변에 늘어선 가난한 마을을 거쳐 호왈라교 위에 서서 강물을 내려다 보았습니다.다리 위로는 인파가 도도히 흐르고 다리 아래로는 말없는 갠지스강이 흐르고 있습니다.히말라야에서 녹아내린 눈물이 그 긴 여정 동안에 수많은 강물들과 한몸이 되어 이제 바다를 만나러 가고 있었습니다.비록 느리고 어두운 강물이지만 단 한걸음도 후퇴하는 법 없이 꾸준히 이곳에 당도하여 그 무거운 가슴을 바다에 섞고 있습니다.

가난은 아름다움을 묻어버리는 어둠이 되기도 하고 그것을 드러내는 빛이 되기도 합니다.

이곳을 찾아 올 때에는 많은 것을 벗어놓고 와야 합니다.제일 먼저 옷을 벗어두고 와야 합니다.누군가가 당신에게 입혀놓은 보이지 않는 옷도 벗어두고 와야 합니다.

그리고 그 앞에 서서 직시해야 합니다.도시가 화려한 의상을 한꺼풀씩 벗어가면 최후로 남는 모습이 어떤 것인가를 직시하여야 합니다.인간이 겹겹의 의상과 욕망을 하나하나 벗어가면 최후로 남는 모습이 어떤 것인가를 직시하여야 합니다.육탈(肉脫)한 도시의 철골(鐵骨)과 적라(赤裸)가 된 정신의 뼈대를 맞대면하는 일-이것은 우리가 결코 외면해서는 안될 삶의 형식과 삶의 내용을 들여다보는 일이라 생각합니다.서울과 캘커타는 4시간이 채 못되는 시차를 두고 직항(直航)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나는 인도의 얼굴을 찾을 수 없을뿐만 아니라 인도의 세기(世紀)를 읽을 수도 없습니다.비단 인도의 세기뿐만 아니라 ‘오늘의 세기’를 짐작할 수도 없습니다.10억에 가까운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인도를 제쳐두고 세계를 이야기할 수는 없습니다.인도대륙뿐만 아니라 21세기에도 건재할 더 큰 대륙들이 지구상의 곳곳에 있습니다.피라미드의 뿔만을 피라미드라 하지 않는다면,거대한 밑동까지를 합하여 피라미드라 일컫는다면 당연히 질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세계는 지금 몇 세기입니까?”

<신영복 성공회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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