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부시의 고공낙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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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72세의 조지 부시 전미국대통령이 3천3백여 상공에서 고공낙하시범을 보였다.70고령에 웬 낙하산훈련인가 싶지만 그에겐 나름대로 숨겨진 이유가 있었다.2차 세계대전때 해군조종사였던 부시는 44년 태평양상공에서 일본군 함대의 총격을

받아 격추됐다.떨어지는 비행기에서 탈출해 낙하산줄을 잡아당겼다.그러나 너무 일찍 잡아당기는 바람에 낙하산이 비행기 동체에 걸려 크게 낭패를 본 경험이 있었다.이후 그는 언젠가는 고공낙하를 다시 해 당시의 실수를 만회하겠다고 별러왔다

한다.이번 낙하산시범으로 그는 청년기의 실수를 만회하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킨 셈이다.

지난달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골프대회에서 52세의 브라이언 에일린이 우승을 차지했다.어깨도 노인처럼 구부정했고 그의 골 깊게 팬 주름진 얼굴은 70대를 방불케 했다.18만달러의 우승상금을 받으며 에일린 부부는 하염없는 눈물을 흘려 주위사람들의 눈시울을 적셨다.

그는 월남전 참전용사다.제대후 프로골퍼가 됐다.한때는 잘나갔다.그러나 76년부터 내리막길에 들어서면서 우승권에서 멀어졌다.세 아이를 먹여살릴 길이 없었다.골프채를 버리고 트럭운전대를 잡기도 하고 막노동판을 전전했다.20년 가까이

떠돌다 그는 못다 한 프로골퍼의 한을 풀기 위해 다시 골프채를 잡고 시니어대회를 목표로 연습에 들어갔다.집을 저당잡혀 대회장으로 가는 비행기표를 마련했다.최종 라운드를 앞둔 밤,싸구려 여관방에서 그는 거울을 마주하고 새벽까지 골프채

를 휘둘렀다 한다.결국 이튿날 그는 11언더파로 최종 우승을 장식했다.

최근 일본 후생성 자문기구인'장수사회만들기'모임은 고령자 정의를 현재의 65세에서 70세로 변경할 것을 제의하는 보고서를 냈다.아직도 힘이 펄펄 넘치는 65세가 무슨 고령이냐는게 그들의 주장이다.우리 사회도 고령화하고 있다.현재는

총인구의 5%수준이지만 2000년이면 7%를 상회할 것이다.바쁜 공직생활을 끝낸 다음 젊은시절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는 전직 대통령,못다한 한을 나이와 관계없이 도전하고 승리하는 한 프로골퍼의 투지에서 우리는 인생의 새로운 의미를 발견한다.은퇴만을 걱정할 것이 아니라 은퇴,곧 새로운 인생의 시작이라는 각오와 준비가 사회와 자신을 젊게 하는 비결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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