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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고장유래>화양동 - 조선태조때 왕실의 목장으로 삼았던 곳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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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광진구화양동의 이름은 이 마을 110번지에'화양정(華陽亭)'이란 정자가 있었던데서 유래됐다.원래 이 일대는 조선 태조가 한양에 도읍을 정하면서 왕실의 목장으로 삼았던 곳인데 세종14년(1432년) 사복제조 판중추부사 최윤덕(崔潤?.이조판서 정연(鄭淵)등이 어명을 받아 정자를 지으니 바로 화양정이다.'화양'이란 주서(周書)에 나오는'귀마우화산지양(歸馬于華山之陽:말을 화산남쪽으로 돌려 보낸다)'의 글귀에서 따온 것으로 무력으로 나라를 세웠지만 무(武)를 쉬게 하고 문치에 힘쓰고 있음을 기리는 뜻.

지금은 이 일대가 유흥가.주택가로 변했으나 당시엔 너른 벌판을 마소가 무리지어 다니는 광경을 정자에 앉아 보는 정취도 꽤 괜찮았던듯 눌재(訥齋) 양성지(梁誠之.1414~1482)는 이같은 풍경을 담아'화양정'이란 시를 남기기도 했다.

한편 일설엔 이곳 동명이'회행리(回行里)'가 와전된 것이란 주장도 있다.영월로 귀양가던 단종이 이곳에서 하루를 묵은뒤 부인과 이별할때 부인이“제발 꼭 돌아와(回行) 주십시오”라고 기원하며 기다렸다고 해 붙여졌다는 것이다.조선시대때 경기도양주군고양주면에 속했던 이곳은 대한제국(1897년)의 한성부

남서(南署)두모방(豆毛坊)전관계(箭串契)장내릉동(場內陵洞)으로 바뀌었다가 1914년 경기도고양군독도면화양리가 됐다. 〈이만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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