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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대기업 부도 정부 불개입방침 문제없나 - 시장원칙에 맡겨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대기업의 부도에 정부가 개입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냐,아니냐는 문제가 한보와 삼미의 도산을 계기로 부각되고 있다.그동안 대기업이나 은행의 파산은 국민경제적 파장을 우려해 금기시해 온 문제다.이 문제를 놓고 구조조정을 더 이상 늦출수 없다는 당위론과 하루아침에 준비도 없이 기업에 모든 책임을 지라는 것은 곤란하다는 현실론이 맞서고 있다.양측 주장을 소개한다. [편집자]

최근 한보와 삼미 부도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퇴출(退出)정책 개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이들 대기업의 부실은 경기순환 과정상의

경기하강에도 기인하나 근본적으로는 장기간 지속된 정부의 지원과 보호

등 경쟁제한적 산업정책하에서 사업의

수익성을 면밀히 검토하지 않은 경영주의 방만한 사업확장에

연유됐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한보와 삼미는 지난 수년간 주력업종.업체제도 등을 통해

대규모 정책자금을 손쉽게 차입할 수 있었다.특히 산업합리화 조치 등

과거의 부실기업 정리가 금융.세제지원을 통해 부실기업과 부실은행의

회생(回生)에만 치중함에 따라 도

덕적 위해(危害)문제가 심화되는 결과를 초래했다.즉'대기업과 은행은

망하지 않는다'는 암묵적 기대하에서 기업은 취약한 재무구조에도

불구하고 차입을 통해 사업확장에 주력했고,은행도

관치(官治)금융체제하에서 본연의 대출심사 기능을 소홀

히 하게 됐던 것이다.

우리의 경제규모가 크게 확대되고 국가간 경쟁이 치열해진 추세를

감안할 때 자금배분에 대한 정부 개입과 인위적 퇴출장벽 설정은 더이상

지속돼서는 안될 것이다.경쟁을 억제하는 시장 외부의 힘이 존재하는 한

기업과 은행의 경쟁력 강화는 기대할 수 없으며 부실에 따른 국민의 경제적 부담만 가중될 것이기 때문이다.퇴출장벽 제거를 통한 부실기업의 정리는 조지프 슘페터가 지적한 바와 같이'창조적 파괴'과정으로 기업과 은행의 경쟁 및 혁신을 촉발함으로써 구조조정을 통한 경제 전체의 생산성 제고에 기여할 것이다.

부실기업의 효율적 정리를 위해서는 기존의 부실한 투자를

매몰비용으로 인식하는 한편,부실기업의 경제적 가치를 누가 가장 잘

평가할 수 있고,경제성이 있다면 누가 가장 효율적으로 경영할

인센티브를 갖고 있는가에 대한 해답을 구해야 한

다.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답이 시장 외부로부터 찾아질 경우 자원배분의

왜곡은 물론 특혜시비나 대외통상마찰을 야기할 것이다.따라서

부실기업의 경제성 평가와 경영주체 선정은 시장원리에 부합하는

경매방식이나 채권단 스스로의 결정에 의해

이뤄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와 함께 기업 부실의 원인제공자들이 책임지는 경기규칙이

확립돼야만 합리적인 퇴출제도가 정착되고,은행의 책임경영체제 구축을

통한 금융의 선진화가 가능해질 수 있다.따라서 경영주.은행.은행감독원

및 정부 등 부실의 원인제공자들에 대

한 책임소재가 명확히 규명돼야 하며,부도에 따른 경제적 손실과 처벌도

이에 상응해 분담.수반돼야 할 것이다.

이상과 같이 시장질서를 확립해 나가기 위한 퇴출장벽 제거는

단기적으론 대출위험 증대 및 대외신용도 실추를 초래해 금융경색과

외환시장 불안이 가중될 가능성이 있다.이러한 금융불안이 확산될 경우

정상적인 금융기관들도 유동성부족사태에 직면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단기적으로 신축적인 통화공급을 통해 금융경색과 실물경제에

대한 부정적 파급효과를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또한 불안심리 확산을

차단하기 위해 금융불안이 예상보다 크게 확대될 경우 금융제도의

안정성 유지 및 예금자 보호 차원에서

중앙은행의 최종 대여자 기능을 활용할 것이라는 점을 국민에게 명확히

밝히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된다. 김준경〈KDI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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