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2월 18일 국회는 전쟁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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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위원장 박진)는 18일 오후 한나라당 의원들만 참석한 가운데 전체회의를 열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을 상정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단독 상정에 대해 민주당 등 야당이 “날치기 상정”이라며 극렬 반발하고 원천 무효 투쟁에 돌입하기로 해 여야 관계가 급랭되는 등 연말 정국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민주당 의원과 당직자 등 100여 명은 동의안 상정을 막기 위해 본청 401호 외통위 회의장 진입을 시도했으나 한나라당 측이 미리 책상과 소파 등 집기를 이용, 출입문을 통제해 진입에 실패했다. 야당 측은 회의장 문을 부수기 위해 해머와 노루발(일명 빠루)·전기톱 등의 장비를 동원했으며 이 과정에서 격렬한 몸싸움이 벌어지는 등 물리적 충돌 사태가 빚어졌다. 민주당 측이 물대포를 쏘자 한나라당 측이 소화기로 응사하는 등 회의장 주변은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아수라장이 됐다. 이 와중에 의원 보좌관·당직자 등이 부상해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다.

이에 앞서 이날 오전 박진 위원장은 민주당이 동의안 상정 반대 입장을 밝히자 질서유지권을 발동, 민주당 의원들의 출입을 막았다. 당시 회의장 안에는 정몽준·남경필·정진석·황진하·김충환·이춘식·정옥임·구상찬·홍정욱 의원 등 한나라당 소속 의원 11명이 출석, 회의장을 지켰다.

박 위원장은 민주당 측이 회의장 문을 부수는 등 진입을 시도하자 “정당한 질서유지권이 무참히 유린된 것에 대해 매우 유감”이라고 말했다. 이어 의사정족수(6명)를 넘긴 것을 확인한 박 위원장은 오후 2시 전체회의 개회를 선언, 비준동의안을 상정한 데 이어 이를 법안심사소위로 넘겼다. 박 위원장은 3분여 만에 정회를 선포했고 한나라당 의원들은 경위들의 보호를 받으며 회의장을 빠져나갔다.

민주당은 의원총회를 열어 ‘의회 쿠데타’ ‘날치기 통과’라며 강력 반발했다. 정세균 대표는 “오늘은 의회주의가 유린당한 치욕의 날로 기억될 것”이라며 “의회 독재가 발붙이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나라당은 ‘불법 폭력 사태’로 규정했다. 홍준표 원내대표는 “더 이상 국회가 폭력이 난무하는 장이 돼서는 안 된다”며 “오늘부터 한마음이 돼 경제 살리기 법안, 세출 예산 부수 법안, 사회 개혁 법안을 처리토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의원 30여 명은 김형오 국회의장을 항의 방문해 비준 동의안 상정의 원천 무효와 재발 방지를 요구하며 밤샘 농성을 벌였다.

이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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