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확인된 대규모 미군 감축 대비책 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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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정부 고위 외교 당국자가 어제 "미국이 지난해 6월 1만2000명 규모의 주한미군 감축계획을 협의하자는 통보를 해왔다"고 말했다. 주한 미2사단 일부 병력의 이라크 차출을 계기로 주한미군 감축 규모를 놓고 이런저런 관측이 있었으나 이번에 명확하게 미국의 구상이 드러난 것이다. 1만2000명은 주한미군 전체(3만7000명)의 3분의 1이고, 육군 규모에는 거의 절반에 해당한다. 특히 감축 대상이 2사단(1만3000명)에 집중된다면 거의 전 병력이 철수하는 셈이다. 주한미군에 안보의 상당부분을 의존해 온 우리로서는 한국군의 전력 보강이 그야말로 시급해진 상황이다.

이라크로 차출되는 미군 3600명의 공백을 메우려 해도 한국군 1개 사단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따라서 1만2000명이 감축될 경우 우리가 부담해야 할 재원이 얼마가 될지는 짐작될 것이다. 특히 2사단의 화력은 우리 기계화사단 3개와 맞먹는다. 자주국방을 위해선 2010년까지 64조원이 든다는 게 국방연구원의 추산이다.

이제 주한미군의 감축 규모가 대규모라는 게 드러난 이상 정부는 말로만 자주국방을 외쳐서는 안 된다. 재원 마련을 위한 구체적 대안을 비롯해 미군 철수가 미칠 경제.사회적 악영향을 차단할 수 있는 종합대책을 조속히 제시해야 한다.

문제는 이런 측면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선 미군이 그동안 주도적 역할을 해 온 한.미 연합작전 체제를 어떻게 조정하느냐다. 주한미군의 대규모 감축은 이 체제 내에서 한국군의 주도적 역할이 불가피해지기 때문이다. 미군의 한국 주둔 근거인 한.미상호방위조약의 개정문제나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도 향후 한.미 간에 핫이슈로 등장할 것이다. 주한미군 기지 이전도 원점에서 다시 논의해야 한다. 결국 주한미군의 대규모 감축은 우리 안보틀의 전면적 재점검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엄청난 도전이 아닐 수 없다. 정부의 보다 치밀한 대비책 마련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