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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고 없이 이라크에 간 부시 기자가 던진 신발에 맞을 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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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14일(현지시간) 이라크에서 현지 기자가 기습적으로 던진 신발에 맞을 뻔 했다. 부시 대통령은 이날 누리 알말리키 이라크 총리와 회담을 마친 뒤 이라크 기자 등과 만났다. 부시는 “이라크 전쟁은 미국과 이라크를 위해 필요하다”며 “이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 순간 기자석에서 “전쟁은 끝났다. 이건 이라크인이 보내는 이별 키스다. 이 개야”라는 소리가 나면서 신발 두 짝이 연달아 부시를 향해 날아갔다. 부시는 두 번 다 재빨리 고개를 숙여 피했고, 신발은 연단 뒷벽에 부딪혀 떨어졌다.

경호팀은 신발을 던진 인물을 덮쳤다. 알바그다디야 TV 기자인 문타다르 알자이디가 범인이었다. 알자이디는 테러와의 전쟁을 계속해야 한다는 걸 강조한 부시에게 항의 표시로 신발을 던진 것이다. 이슬람권에서 특정인에게 신발을 던지는 건 노골적으로 모욕을 주겠다는 뜻이다.

신발 세례를 피한 부시는 기자 등에게 “ 날아온 신발은 사이즈 10(280mm)짜리였다” 며 농담을 했다.

부시는 최근 체결된 미-이라크 안보협정을 기념하기 위해 퇴임 한 달여를 앞두고 이날 재임 중 네 번째로 예고 없이 이라크를 전격 방문했다. 다음날에는 아프가니스탄을 불시에 찾았다. 그가 두 나라를 방문한 건 두 곳에서의 전쟁이 정당했다는 명분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이라크에선 “전쟁의 과업은 쉽지 않지만 미국의 안보와 이라크의 희망, 그리고 세계 평화를 위해 필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아프가니스탄에선 “8년 전보다 크게 달라졌다”며 “우린 희망적인 진전을 보고 있다”고 말했다.

부시의 이번 방문은 극도의 보안과 위장 속에 이뤄졌다. 일정이 새나가면 신변에 위험이 생길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백악관은 동행 취재한 기자 13명에게 방문 계획을 설명하면서 비밀을 지키겠다는 서약을 하라고 요구했고, 기자들은 수용했다. 백악관은 부시의 실제 스케줄이 노출되지 않도록 거짓 일정을 언론에 알렸다. 부시가 14일 밤 워싱턴 내셔널 빌딩 박물관에서 열리는 ‘워싱턴의 크리스마스’라는 자선 공연에 참석할 것이라는 자료도 배포했다.

하지만 부시는 이날 바람막이 가죽 점퍼 차림에 43번(43대 대통령이란 뜻)이란 글자가 적힌 야구 모자를 쓰고 앤드루스 공군기지에 도착했다. 그때 미 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 원’에 동승한 기자들은 잡지 등 간단한 읽을거리를 뺀 모든 소지품을 압수당했다. 외부와의 통신을 철저히 차단한다는 원칙에 따라 그런 조치가 취해진 것이다. 부시는 비행 도중 이례적으로 기자들과 만나 환담했다. 그는 극비로 이뤄진 이번 방문을 언급하면서 “(앤드루스 기지에서도) 내가 누구인지 아무도 몰랐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엉뚱하게도 공개된 자리에서 기자로부터 ‘신발 테러’를 당할 뻔했던 것이다.

워싱턴=이상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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