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제13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이세돌의 실용주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7면

<8강전>
○·이창호 9단 ●·이세돌 9단

제5보(50∼59)=하변이 크다. 그러나 턱밑에 다가온 흑▲의 칼끝이 심상치 않다. 백은 흑▲을 무시하고 하변의 황금을 향해 달려갈 수 있을까.

고심하던 이창호 9단이 50으로 받아주고 만다. ‘참고도1’ 흑1을 도저히 견딜 수 없다고 본 것이다. 보통은 백2로 이어 그만이지만 지금은 3으로 파고드는 강수가 있다. 귀를 선수로 빼앗긴 채 A의 공격마저 남게 된다. 그렇다고 ‘참고도2’는 흑7의 호구가 너무 좋다. 이세돌 9단은 만족했을 것이다. 상변을 선수로 견제하고 오래전부터 쟁탈의 요소였던 하변마저 차지했으니(53, 55) 일은 잘 풀리고 있는 것이다.

괴롭지만 54는 절대의 한 수. 자칫 흑B의 일격을 당하는 날엔 형태가 무너지며 곤마로 전락하게 된다. 그렇더라도 피 한 방울 나지 않게 낮게 깔아버린 55는 대단했다. 고저의 리듬, 폼이나 체면을 일절 배제한 이세돌식 실용주의라고나 할까(구경하던 프로들의 입에서 일제히 “햐!”하는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조용히 판을 살피는 이창호 9단의 안색이 무겁다. 마음도 무거울 것이다. 실리에서 밀리는데 두터움도 딱히 없다. 일단 상변으로 치고 들어가(56) 추이를 지켜보지만 흑이 알기 쉽게 57로 뛰고 보니 지나간 50마저 후회스럽다(전투 대형이라면 50은 C가 낫다. 실전은 흑C의 약점 때문에 58이 급했다).

박치문 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