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보로스토프스키 내한 연주회를 보고 - 홍승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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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브라이언 터펠.토머스 햄슨과 함께 21세기를 이끌어 갈 3대 바리톤으로 꼽히는 드미트리 흐보로스토프스키의 내한연주회가 9일 오후5시 KBS홀에서 있었다(중앙일보 주최).이제 막 떠오르는 샛별이라 청중 대부분이 오디오 매니어와 젊은

성악도들이었으며,그런 만큼 객석의 분위기는 예민했고 열광적이었다.

한마디로 흐보로스토프스키의 목소리는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추고 있었다.강약의 조절도 자유로웠고 고음과 저음의 한계도 없었다.러시아 저음 가수들의 공통적인 매력인 어둡고 깊은 음색을 가졌으면서도 부드럽고 감미로운 피아니시모를 고음역에

서까지 자유자재로 구사했다.

라흐마니노프의 가곡을 부른 전반부 순서에선 저음에서도 벌어지지 않고 모아져 공명되는 소리가 특히 돋보였지만 고음과의 매끄러운 연결이 완벽하게 이루어지지는 않았다.바로크시대부터 베르디에 이르는 오페라 아리아를 선보인 후반부 순서에서

는 대체로 끌어들이는 쪽보다 내미는 쪽의 발성에 치중했고 이 때문인지 벨리니나 도니제티에 이르러서는 음정이 불안해지기도 했다.언어의 차이에서 오는 발성의 문제는 정도의 차이일 뿐이지 어느 나라 가수에게나 공통적인 과제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삶에 대한 관조에서부터 감미로운 사랑의 노래까지 마치 스스로의 체험인양 절절히 토로하던 흐보로스토프스키는 마지막 곡인 베르디의 리골레토에 이르자 마침내 폭발하는 분노와 절망까지도 화산의 폭발처럼 격렬하게 토해냈다.저음 가수의 또

다른 매력인 해학적인 모습이 없다 싶더니 앙코르 순서에서 '세비야의 이발사'를 능청스럽게 불러댔다.다른 연주회에서 좀처럼 볼 수 없었던 청중들의 기립박수가 이날 감동을 가늠하게 했다.

홍승찬〈음악평론가.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사진설명>

세계 성악계의 떠오르는 샛별 드미트리 흐보로스토프스키의 독창회는 어느

때보다 예민하고 열광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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