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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백열 살 금강송, 숭례문 기둥으로 천년을 살리라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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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호 18면

나는 금강송(金剛松)입니다. 소나무 중의 왕이라 할 수 있지요. 목질 부분이 황금빛이라 황장목(黃腸木)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더디게 자라 단단하고 송진을 많이 머금어 잘 썩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예부터 왕실의 관을 짜거나 궁궐을 짓는 데 쓰였습니다.

나라의 부름 거부 않은 백두대간 소나무의 왕

자란 곳은 백두대간 줄기가 지나는 강원도 삼척시 미로면 활기리의 황장산 자락입니다. 태조 이성계의 5대조 이양무 장군의 묘인 준경묘가 있는 곳이지요. 세상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이곳은 한국 최대의 금강송 군락지입니다. 울진의 소광리가 금강송 산지로 유명하지만 문화재 복원의 대임을 맡은 대목장들은 이곳에서 쓸 만한 재목을 찾습니다.

고종 때 경복궁을 중건할 때도, 1961년 숭례문을 보수할 때도 이 산에서 많은 금강송이 서울로 실려 갔습니다. 나는 아직 어렸고 재목으로 쓰기에는 부족했습니다. 능선 아래 양지바른 곳에서 푸른 가지를 드리우고 때를 기다렸습니다. 그 세월이 어느덧 110년이 넘었네요.

지난 10일 사람의 발길이 드물던 산에서 큰 행사가 열렸습니다. 전주 이씨 준경묘 봉향회 회원들은 고유제를 지내고 문화재청은 돼지를 잡아 고사를 지냈습니다. 드디어 내 차례가 온 것이지요. 문화재청 관리는 광화문을 새로 짓고 불탄 숭례문을 복원하기 위해 스무 그루의 금강송을 자르게 됐다고 산신께 고했습니다.

도끼를 든 목수가 나를 올려다보며 외쳤습니다. “어명이요!” 나라 일로 부득이 자르게 되었으나 자기 책임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의 눈에 긴장이 스쳐가는 걸 봤습니다. 오래된 나무는 영물이라 기가 약한 사람이 자르다간 몸져누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시퍼런 도끼 날이 발치를 찍을 때도, 전기톱이 몸을 파고들 때도 거부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쓰러졌을 때 나이테를 헤아린 신응수 대목장은 “상태가 좋아 광화문이나 숭례문의 기둥으로 쓸 수 있겠다”고 했습니다. 나는 나무로서의 생명은 다했습니다. 하지만 경복궁의 정문이나 서울의 상징으로 다시 태어나 1000년 세월을 살아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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