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책보다 실기가 더 나빠 … 지금은 재정 쏟아부을 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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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같은 위기 때는 실책보다 실기가 더 나쁘다. 재정적자가 늘어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지출을 더 과감하고 효율적으로 늘려야 한다.”(이인실 서강대 교수)

“경기가 회복되고 세수가 늘면 재정적자를 다시 줄일 수 있다. 지금은 우선 재정지출을 대폭 늘려 경기부터 살려야 한다.”(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상무) <관계기사 3면>

경기침체에서 벗어나기 위해 재정지출을 확 늘려야 한다는 지적이 힘을 받고 있다. 지금은 전시나 마찬가지인 만큼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더 늦기 전에 대대적인 경기부양을 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급한 불부터 끄고, 재정적자는 경제가 나아진 뒤 다시 줄이면 된다는 진단이다.

실제로 정부가 경기부양에 ‘올인’해야 할 정도로 경기침체의 골은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11월에 새로운 일자리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7만8000개 늘어나는 데 그쳤다. 2003년 12월 이후 4년11개월 만에 가장 저조한 것이다. 제조업의 심장부인 울산에선 실업률이 4.5%를 기록해 1년 동안 두 배로 뛰었다. 일자리를 늘리고, 저소득층을 지원하려면 정부가 나서는 수밖에 없다.

다른 나라들은 재정적자가 늘어나는 것을 감수하고, 대대적인 경기부양책을 동원하고 있다. 중국은 국내총생산(GDP)의 16%인 4조 위안(약 5842억 달러)을 쏟아 붓는 ‘중국판 뉴딜’에 착수했다.

미국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 당선인이 250만 개 일자리 창출을 목표로 대공황 이후 최대 규모의 사회간접자본(SOC) 건설 계획인 ‘신뉴딜’(최대 1조 달러) 추진을 선언했다. 일본도 27조 엔(약 2895억 달러)의 재정을 투입할 계획이다.

우리는 재정 확대와 감세를 포함해 GDP의 3.7%인 33조원 규모의 경기부양책을 마련했다. GDP의 16%를 쏟아 붓는 중국이나 7% 이상을 투입할 전망인 미국, 6.6%를 푸는 일본에 비해 많이 부족하다. 그래서 우리 정부의 상황 인식과 대처가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부가 지난달 초 내놓은 14조원 규모의 ‘11·3 대책’은 전제부터 틀렸다. 주력 수출시장인 미국· 유럽·일본이 내년에 플러스 성장을 할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하에 대책을 만들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실수할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더 빠르고, 더 과감하게 대응하라’고 주문한다. 김종석 한국경제연구원장은 “SOC 투자 확대, 세금 감면, 규제 완화 등 모든 부양책을 동원해 경기침체의 장기화를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정부가 자동차에 붙는 개별소비세 인하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한 이상 서둘러 내려야 한다. 각국 중앙은행이 금리 인하를 통해 시중 유동성을 늘리는 것도 유념해야 한다. 오문석 LG경제연구원 상무는 “정부의 정책 의지와 능력에 대해 시장이 우려하고 있다”며 “과감하고 단호한 정책으로 시장의 신뢰부터 회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렬·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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