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어에 수험생 몰린 이유 있었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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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올해 수능에서 가장 많은 학생이 선택한 제2외국어는 아랍어다. 2만9278명(전체 응시자 중 29.4%)이 응시해 일본어(2만7465명, 27.5%)·중국어(1만3445명, 13.5%) 등을 제치고 응시자 수 1위를 처음으로 차지했다. 2004년 6월 수능 모의평가 때 1명에 불과하던 응시자 수는 2006학년도 수능 2184명, 2007학년도 5072명, 2008학년도 1만3588명으로 늘었다.

현재 전국에서 아랍어를 제2외국어로 가르치는 고교는 한 곳도 없다. 그런데도 아랍어가 인기 있는 이유는 ‘등급과 표준점수를 따기 쉽다’는 인식 때문이다. 수험생들이 많이 모이는 인터넷 카페에는 “다른 외국어는 외고생들이 보니 높은 등급을 받기 어렵지만 아랍어는 거의 다 찍는 사람이 많아 괜찮다” “독학해도 어느 정도 점수는 받을 수 있다”는 글이 올라와 있다. 표준점수는 수험생 개인의 점수가 평균점수로부터 어느 위치에 있는지 알려주는 지표다. 잘하는 학생과 못하는 학생 간 차이가 크면 최고점이 높아진다. 결국 아랍어는 잘하는 학생이 적어 평균이 다른 과목보다 낮아 점수를 조금만 잘 받아도 표준점수가 올라간다는 논리다.

실제 올해 아랍어에서 162명이 표준점수 100점을 받았다. 일본어 표준점수 최고점은 70점, 프랑스어 최고점은 69점에 그친다.한국교육과정평가원 이양락 출제연구부장은 “결국 아랍어는 학생 간 차이가 많이 나는 것”이라며 “독학하는 학생들이 대부분인데 일부 아랍권에서 살다 온 학생 등이 높은 점수를 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다른 과목을 선택한 학생들은 높은 원점수를 받고도 결과적으로 아랍어 선택자보다 더 낮은 표준점수를 받는 형평성 문제가 생긴다. 김기석 채점위원장(서울대 교수)은 “학교에서 배우지 않았더라도 점수를 따겠다는 학생들의 의지가 통용되는 시험을 어떻게 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또 다른 평가원 관계자는 “제2외국어 반영 대학이 많지 않고 대다수 대학이 자체 환산점수를 활용하기 때문에 큰 영향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백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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