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은 달라도 우리는 한식구' 과천 5가구 친척 안부러운 가족공동체 생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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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과천 문원초등학교 2년생인 용훈(10)은'형제'가 8명이다.1학년부터 6학년까지 같은 학교에 다니는 형.누나.동생이 있는 것이다.

요즘 시대에 웬 대가족이냐고 하겠지만 실은 한 동네에서 한 식구처럼 지내는 다섯 가족의 얘기다.외동아들인 용훈이네를 비롯,자녀가 적게는 1명에서 많게는 3명에 이르는 다섯집이 모여 형제처럼 함께 키우며 살아간다.

경기도과천시원문동 주공아파트 위아랫동 이웃인 이들 가족이 두터운 마음의 벽을 허물고 의기투합한 것은 95년초부터.1학년6반 동급생이자 동갑내기 용훈.태훈.정주.영기.지윤 5명의 엄마들이 녹색어머니회 활동 때문에 자주 얼굴을 마주친

게 계기가 됐다.

처음엔 엄마들끼리 아이들 생일잔치도 같이 차려주고 영화나 연극 구경도 다니며 의좋게 지내다가 지난해 가을 이후엔 아빠들까지 가세,본격적인 가족모임으로 발전한 것.

녹색어머니회가 인연이 된 탓에 자칭'녹색 조직'이라고도 부르는 이 가족모임이 가장 자랑으로 내세우는 것은'아빠와 함께 하는 일요축구'.지난해부터 한 주 건너 일요일 오후면 학교 운동장에 전 가족 19명이 모여 편을 짜 축구 경기를

한다.아빠들과 아이들이 3시간 정도 흠뻑 땀을 내고 공을 차는 동안 엄마들은 자전거도 타고 수다도 떨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운동이 끝난후 우르르 대중탕으로 몰려가 목욕도 하고 2만원씩 걷은 회비로 칼국수 저녁을 먹는 일요일은 아

이.어른을 막론하고 전가족이 손꼽아 기다리는 날.

“주말이면 피곤해 쓰러져 자기 일쑤였지요.하지만 억지로라도 짬을 내 함께 놀아주니 아이가 얼마나 좋아하는지 몰라요.저도 오랜만에 운동을 하니 몸도 가쁜해졌고요.”

태훈이 아빠 임용안(38)씨의 말이다.

“용훈이가 외아들이다보니 어리광이 많았거든요.다른 아이들이랑 어울리며 운동도 하고 여행도 다니면서 얼마나 씩씩해졌는지 놀랄 정도예요.”

아빠 서익식(39)씨의 칭찬에 용훈이는 어깨를 으쓱한다.

일요일 외에도 이들은 틈만 나면 끼리끼리 만나 저녁도 같이 해먹고 외출할 땐 아이도 스스럼없이 맡기며 정을 나눈다.서로 대화중에 내 아이,네 아이라는 말 대신'우리 아이'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하는 건“한 식구같다”는 이들의 자랑이

결코 과장이 아님을 보여준다.

아이들을 계기로 만난 이들 가족은 아이들 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형제처럼 지내는 흔치 않은 모습을 연출한다.목요일 저녁이면 아이들이 한 집에 모여 노는 동안 다섯쌍의 부부는 인근 과천시민회관에서 볼링을 친다.지난해 12월엔 김은령.

서익식씨 부부의 결혼기념일에 덩달아 나머지 4쌍의 부부까지 설악산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정주엄마에서 정주로,다시'향순아'로 제 호칭이 바뀌었죠.학창시절 이후로 누가 제 이름을 부르는 건 처음이에요.”

엄마들끼리 뿐만 아니라 다른 남편들과도 남매처럼 흉허물 없이 지낸다며 김향순(39)씨는 행복해 한다. 〈신예리 기자〉

<사진설명>

경기도과천시원문동 주공아파트에서 한 식구처럼 사는 다섯가족이 일요일

축구시합을 하고 있다. 〈김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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