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톡스 같은 ‘멀티플레이어 약’ 찾아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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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경기침체 속 위기에 강한 인재는 다방면에 전문성을 가진 멀티플레이어가 아닐까. 사용자 입장에서는 같은 값에 여러 인재를 고용하는 효과를 보기 때문이다. 제약업계에서는 요즘 여러 가지 질환에 약효를 보이는 ‘멀티 플레이어 드럭’이 유행이다. 각 업체들이 특정 질환에 작용하는 약물에서 또 다른 약효를 찾아내는 연구에 경쟁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이를 두고 전문용어로 ‘적응증 추가’라고 한다.

프랑스계 제약회사인 사노피-아벤티스코리아는 위암과 대장암 치료제로 사용해 온 ‘엘록사틴’이 췌장암에도 약효를 나타낸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최근 췌장암 치료제로 처방 범위를 넓혔다. 이 회사 항암제 사업부 이주호 실장은 “자체 임상시험을 거쳐 세계에서 처음으로 엘록사틴에 대해 췌장암 치료 적응증을 허가받았다”며 “이는 치료제가 적은 췌장암 환자에게 선택의 폭을 넓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사노피-아벤티스코리아는 올 들어 식품의약품안전청으로부터 3건의 적응증 추가를 허가받았다.


피부미용에 사용하는 한국엘러간의 보톡스도 올 7월 치료범위를 넓혔다. 주름 개선은 물론 사시와 안검경련, 소아뇌성마비, 다한증 치료제로 쓰여 온 보톡스가 성인 뇌졸중 환자의 국소근육 경직 치료에도 쓰일 수 있게 된 것이다.

제약사들이 적응증 추가에 매달리는 이유는 신약 개발에 비해 시간과 비용을 훨씬 단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존에 허가받은 약물의 안전성을 이미 인정받았으니 독성시험을 생략하고, 새로운 질환에 대한 약효만 입증하면 된다. 한국제약협회 관계자는 “신약에 대한 허가기준은 갈수록 까다로워지는 추세여서, 기존의 약물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적응증 추가는 제약사에 매력적인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적응증 추가는 다국적 제약사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국내 1위 제약사인 동아제약은 발기부전 치료제로 시판 중인 ‘자이데나’를 간문맥고혈압 치료제로도 사용하기 위해 유럽에서 임상시험을 하고 있다. 약효를 인정받으면 세계 처음으로 간문맥고혈압 치료제가 탄생하게 된다.

유한양행의 레바넥스 역시 적응증 추가를 통해 큰 폭의 매출 신장을 노리고 있다. 위염과 위궤양, 십이지장궤양 치료제인 레바넥스는 지난해 상반기 47억원의 매출을 올린 데 이어 올 상반기에는 두 배를 넘는 96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올해 매출은 200억원으로 예상된다. 유한은 레바넥스의 매출을 더욱 늘리기 위해 현재 역류성식도염 치료제로 임상시험을 진행 중이다.

바이오 기업들도 적응증 추가에 적극 나서고 있다. 2001년 개인맞춤형 연골세포 치료제 ‘콘드론’을 판매하기 시작한 세원셀론텍은 치료 범위를 최근 무릎관절에서 발목관절로 확대했다. 콘드론은 국내에서 처음 생명공학 의약품으로 승인받은 제품이다.

심재우 기자

◆적응증 추가=어떤 약물에 의해 치료효과를 나타내는 질환이나 증상을 늘리는 작업이다. 제약사는 식약청으로부터 특정 약물의 시판을 허가받을 때 타깃으로 하는 질환을 정해놓는데, 시판 이후 다른 질환에도 약효가 있다는 사실을 임상시험으로 입증하면 식약청에 별도의 허가를 요청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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