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뉴스] 개인 파산 신청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8면

16세기 유럽
베니스의 상인 안토니오는
구혼을 위한 여행경비 때문에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에게
살 1파운드를
담보로 걸었었다.

21세기 대한민국
신용도 담보도 없는 서민은
집세.학비.밥값 때문에
돌리던 카드마저 안 돌려지면
사채업자에게 약속한다.
"빚 대신 내 신체를 포기한다."

고대 아테네의 솔론은
몸을 담보로 빚을 지고
돈을 못 갚으면 노예로 팔려가는
가혹한 법을 없앴다.

고구려의 고국천왕은
멀쩡한 농민이 흉년 때문에
귀족의 노비가 되는 걸 막기 위해
나라가 쌀을 빌려주는
'진대법'을 만들었다.

통장 하나 못 만들고
번듯한 직장은 꿈도 못 꾸는
현대판 노예딱지,
'신용불량자' 400만명 시대.

워크아웃.배드뱅크에
개인회생제도도 시작되지만
더 이상 돈 안 갚고
남은 빚도 깨끗이 취소된다며
'신불자'들은 지금
법원으로 몰려간다.

무너지는 중산층을
살리겠다며
나라가 만들어놓은 탈출구
개인파산제도.

솔론의 개혁처럼
고구려의 진대법처럼
나락으로 떨어진
절박한 사람들을 끌어올리는
동아줄이 될 수 있을까.

*빚을 갚지 못해 법원에 파산 신청을 내는 개인 파산자가 급증하고 있다. 대법원에 따르면 지난 1~3월 개인 파산 신청은 1802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2.6배로 늘어났다.

김현경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